멕시코판 '갑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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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지난달 26일 멕시코의 수도 멕시코시티의 부유층 거주지 콜로니아 로마의 유명 식당 ‘막시모 비스트로’. 붐비는 점심 시간에 나타난 한 20대 여성은 “야외 쪽 테이블을 달라”고 요구했다. “예약 손님 때문에 자리가 없다”는 종업원의 말에 여성은 “아빠한테 전화해 식당 문을 닫게 하겠다”고 위협했다.

두 시간 뒤 연방 소비자보호국(PREFECO) 조사원들이 들이닥쳐 식당을 폐쇄했다. 여성은 국장 움베르토 베니테스의 딸 안드레아(26·사진)였다. 카페 손님들은 이 과정을 스마트폰으로 기록했고 사건은 순식간에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레이디 PREFECO’라는 제목으로 번졌다. 안드레아의 신원과 트위터 계정, 아버지가 누구인지도 바로 드러났다. 베니테스는 카를로스 살리나스 전 대통령 시절 검찰총장을 지낸 유력 인사다. 안드레아의 ‘갑(甲)의 횡포’는 사회 지도층과 집권당인 제도혁명당(PRI)에 대한 비난을 몰고 왔다. 야당은 “PRI가 전성기에 휘두르던 공권력 남용을 다시 시작했다”고 공격했다.

 사건이 걷잡을 수 없게 번지자 안드레아는 이틀 후인 지난달 28일 “내 행동으로 불편함을 느낀 사람들에게 미안하다”고 트위터를 통해 사과했다. 하지만 “종업원들이 순서를 지키지 않고 무례해서 생긴 일”이라고 사족을 붙이면서 오히려 기름을 부었다. 아버지의 공식 사과도 대중의 분노를 잠재우지 못했다.

 스캔들은 결국 베니테스가 물러나는 것으로 마무리됐다. 라 프렌사 등 멕시코 언론은 15일 엔리케 페냐 대통령이 베니테스를 해임하기로 결정했다고 보도했다. 미겔 오소리오 대통령 비서실장은 “지난달 28일 시작된 조사에서 베니테스는 직접 개입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지만 과잉 대응으로 국가 기관에 대한 신뢰가 떨어져 해임키로 했다”고 말했다. 절차를 무시한 조사에 관여한 PREFECO 간부 4명도 함께 옷을 벗었다.

 멕시코 지도층의 안하무인 행동이 대중의 분노를 일으킨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11년엔 멕시코시티의 부유층 거주지 폴란코 지역에서 여성 두 명이 경찰을 괴롭히는 동영상이 ‘레이디 폴란코’라는 제목으로 공개돼 문제가 됐다. 지난해엔 부유한 사업가가 식당 주차 담당 직원을 구타하는 장면이 공개돼 구속됐다.

전영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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