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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 형사 제도의 연구」|서일교씨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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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이조 5백년간, 최지은 자를 다스리던 제도와 그 운영의 실례를 한데 모아 체계화한 「조선왕조 형사 제도의 연구」가 서일교 법제처장에 의해 저술되었다.
한문 원전의 인용문과 주가 까맣게 실린 4백50여면의 법학 전문 서적.
『참 「아이러니컬」 한 사실입니다…』 법학계의 평판처럼 이 책이 「처녀지의 개척」이 된 것을 두고 하는 그의 첫마디였다.
2천여년 전의 로마·그리스 법제사는 대학에서 으레 강의한다. 책도 수두룩하다.
그러나 한국의 대학이면서 제나라의 그것은 배울 수 없다. 신라·고려는커녕 이조에 관한 책마저 전혀 없다.
40년전 일인들에 의한 「조선 구시의 형정」·「조선 법제사고」 같은 수박 겉 핥기의 법전 소개서가 있었다. 하지만 그건 대학에서 강의할 만한 교재가 될리 없다. 거기 법 제도의 진실을 파악할 판례가 결여 돼 있기 때문이다.
그는 말한다. 『문헌·자료가 없는게 아니라 총체적으로 정리가 안됐던 겁니다. 그렇다고 선배들이 관심을 안뒀던 것도 아닙니다. 단지 큰 힘이 드는 작업이면서도 뒷받침할 경제력이 없는 탓이겠지요』 그는 자신의 저서에 대해 이조 법제의 테 (프레임)를 짜놓는데 불과하다고 한다. 방대한 이조실록, 비변사 등록, 일성록, 사송 유취…등 흩어져 있는 옛 기록을 글자 하나하나 헤아리듯 조사하고 고증하는 작업으로 2년 반. 자신의 여러 저서 가운데 가장 욕심 내 하느라했지만 완전히 지쳐 버렸다고 한다.
자그만 키에 조용한 용모. 법제처장실의 훤한 방임에도 너무나 조용한 그의 말씨는 아무래도 학자의 연구실로 착각케 한다. 47세. 관계에 묻혀 살지만 마음은 책갈피에 접혀 있는 듯 싶다.
『책을 쓰는 동안 이조를 상당히 옹호하게 됐습니다. 임금의 명령이 곧 입법이요 행정 처분이 된 시대이지만 그 한사람의 뜻대로 절대권이 자행됐으리라 짐작해 온건 터무니없는 오해였다』면서 사실을 들춰 판례를 보인다.
이조의 형사 절차 제도를 연구하는 동안 현대의 그것에 뒤지지 않는 합리적인 것이었음을 비로소 깨닫게 됐다. 하나의 입법도 밑에서 충분히 검토해 이루어진 것이요 특히 이조는 관료 제도가 발달한 까닭에 왕을 주위에서 상당히 견제했음을 확인했다는 것이다.
『세계사의 봉건전 제국에서 볼 수 없는 합의제를 이조에선 찾아 볼 수 있읍니다』 그것은 이조 사회를 이해하는데 흥미 있고 귀중한 사실. 서 처장은 한결 자신에 넘치는 말투다.
이조 사회에선 질서에 위배되는 모든 행위를 형사 사건으로 다뤘다. 극히 경미한 사사로운 일만이 민사에 속했을 뿐.
다만 이조 사회에 있어 법제도의 특징은 신분의 고하·귀천에 따라 형량의 차가 심하고 조문에 명시한 정형대로 기계적으로 처리하게 된 점이다. 그러나 성문법 이상으로 유교의 윤리가 절대적인 권위를 지녔음도 그는 아울러 지적한다.
그 윤리는 바로 50년 전까지만 해도 이 땅의 지도 이념. 뿐 아니라 지금 한국인의 마음과 사회 속에 그대로 흐르고 있는 사장이요, 관습이다. <이종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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