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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클립] 뉴스 인 뉴스 (224) 투표제도 변천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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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0면

김경진 기자

4월 24일 실시된 국회의원 재·보궐 선거 세 곳의 평균 투표율은 41.3%로 역대 재·보궐 선거에 비하면 높은 편입니다. 새누리당의 김무성·이완구, 무소속 안철수 후보 등 유권자 관심이 높은 인물들의 출마 영향이 컸다는 분석입니다. 그러나 숨은 공신이 있었습니다. 이번 재·보선에서 첫 도입된 사전투표제입니다. 사전투표제는 뭔지, 그동안 우리나라 투표제도는 어떻게 변천해 왔는지 등을 알아봅니다.

사전투표제는 별도의 부재자투표 신고 없이 투표일 5일 전부터 이틀간 투표소에 가서 투표할 수 있게 한 제도다. 유권자 입장에선 투표할 수 있는 날이 사흘로 늘어난 셈이다. 이번 국회의원 재·보선 지역 세 곳의 사전 투표율은 16.8%(전체 유권자 수의 6.9%)에 달했다. 부재자 투표의 업그레이드 버전이다. 민주당은 투표 당일 투표 시간도 늘려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 최초의 부재자투표

지난 4·24 재·보궐 선거에선 사전투표제도가 처음으로 도입돼 19·20일 이틀 동안 전국 12개 지역 79곳 투표소에서 사전투표가 진행됐다. 사진은 사전투표 첫날이었던 19일 서울 노원구 상계3·4동 주민센터에서 주민들이 투표하고 있는 모습. 사전투표제도가 도입되면서 사실상 선거일이 3일로 느는 효과를 볼 수 있게 됐다. [중앙포토]

최초의 부재자투표제는 1960년 제5대 국회의원 선거에 도입된 ‘부재자우편투표제도’다. 부재자 선거인은 자신이 거주하는 곳에서 투표용지를 받아 기표한 뒤 이를 선거구선거위원회에 우편으로 보냈다. 그러나 부재자투표자의 대다수가 군인이었던 상황에서 우편 투표에 대한 공정성 시비가 끊이지 않았다. 대리 투표나 공개 선거의 우려가 있다는 이유에서다. 그러다 14대 총선을 이틀 앞둔 92년 3월 22일 투표제 변화의 계기가 된 사건이 발생한다. 육군 제9사단 소속 이지문 중위가 군부재자 투표 부정사례를 폭로한 것. 그는 당시 “부대 안에서 이뤄진 부재자투표에서 지휘관의 정신교육, 공공연한 공개 투표, 기무부대의 사전 검열이 있었다”고 주장했다. (이 중위는 기자회견 직후 근무지 무단이탈죄와 허위사실 적시로 인한 명예훼손 등 혐의로 구속됐다. 국방부 수사 결과 기소유예 처분을 받았지만 사단징계위원회에 회부돼 파면됐다. 93년 이 중위는 9사단장을 상대로 파면처분취소청구소송을 제기했고 원고승소판결을 받았다. )

 군부재자투표 부정폭로 사건을 계기로 14대 총선 후 선거 소송이 줄을 이었고, 9개월 뒤 제14대 대통령 선거에선 사상 처음으로 부재자투표소가 도입됐다. 부재자 선거기간을 정해놓고 투표소를 설치해 투표자가 해당 투표소에 용지를 가져와 투표관리관 감독 하에 투표를 하도록 한 것이다. 대리투표·공개투표의 시빗거리를 원천적으로 차단하겠다는 목적이었다.

# 1인 2표제의 도입

1971년 4월 23일 제7대 대통령 선거의 ‘주월(베트남 파병) 부재자 투표지’가 김포공항에 도착하는 모습. [중앙포토]

우리나라는 제16대 국회의원 선거(2000년) 때까지는 국회의원과 시·도의원 비례대표 의석을 지역구 후보의 총 득표수에 따라 배분하는 ‘1인 1표 비례대표제도’를 실시했다. 공직선거법에 규정된 ‘1인 1표제’의 원칙(제146조 2항)에 따라 한 사람이 한 표만 행사해 후보에 대한 지지를 곧 정당에 대한 지지로 간주한 것. 그러나 2001년 7월 19일 헌법재판소는 지역구 선거 결과에 따라 비례대표 의석을 배분하는 공직선거법 제189조 제1항에 대해 한정 위헌 결정을 내린다. 당시 헌법재판소는 재판문에서 “유권자가 후보자나 정당 중 어느 한쪽만을 지지할 경우 후보자 개인을 기준으로 투표하든, 정당을 기준으로 투표하든 어느 경우에나 자신의 진정한 의사는 반영시킬 수 없고, 후보자든 정당이든 절반의 선택권을 박탈할 수밖에 없으며, 신생정당에 대한 국민의 지지도를 제대로 반영할 수 없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2002년 3월 7일 국회는 공직선거법을 개정해 비례대표제를 시행하고 있는 시·도의회의원선거부터 1인 2표제를 우선 적용키로 했다. 이로써 2002년 6월 13일에 실시된 제3회 지방선거에선 광역·기초 단체장과 광역기초 의원을 뽑기 위한 네 장의 투표 용지에 광역 비례의원을 뽑기 위한 투표 용지가 한 장 더 추가됐다. 2004년 4월 15일 실시된 제17대 국회의원선거에서도 1인 2표제가 시행됐다.

# 선관위가 버스 대절까지

14대 총선을 이틀 앞둔 1992년 3월 22일, 육군 제9사단 소속 이지문 중위가 군 부재자투표 부정사례를 폭로했다. 이 사건을 계기로 9개월 뒤인 14대 대통령 선거에서 부재자투표소가 도입됐다. [중앙포토]

지금은 대학생들이 대학교 내에서 부재자 투표를 할 수 있지만 2002년 제16대 대통령선거 이전까지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2002년 10월 30일 대선유권자연대와 시민사회단체·대학생들이 중앙선관위를 방문해 학교 내 부재자투표소를 설치해 달라고 요청했다. 중앙선관위는 대학교가 소재하는 읍·면·동에 부재자 투표자 신고인 수가 2000명 이상일 경우 학교 내 부재자투표소를 설치키로 결정한다. 첫 도입인 만큼 부작용도 있었다. 대학생들 상당수가 처음으로 부재자 투표를 경험하다 보니 부재자투표소에 오기 전 미리 기표를 하고 와 무효 처리된 경우가 많았다. 비밀투표의 원칙에 위배된다는 이유에서다.

 이처럼 투표 ‘편의성’은 점차 확대돼 왔다. 2008년에는 중앙선관위가 아예 유권자를 ‘모셔오는’ 서비스를 개시했다. 그해 2월 29일 개정된 공직선거법(제6조 2항)은 “선관위는 선거인의 투표 참여를 촉진하기 위해 교통이 불편한 지역에 거주하는 선거인 또는 노약자·장애인 등 거동이 불편한 선거인에게 교통편의를 제공하거나, 투표를 마친 선거인에게 국공립 유료 시설의 이용요금을 면제·할인하는 등의 필요한 대책을 수립·시행할 수 있다”고 규정했다. 그 결과 선관위는 18대 대선에선 1051곳의 읍·면·동에 차량 1447대를, 19대 총선에선 989곳의 읍·면·동에 차량 1336대를 지원할 수 있게 됐다.

# 2009년 재외국민 투표 부활

여기서 퀴즈 하나. 우리나라에 사는 외국인과 다른 나라에 사는 국민 중 누가 먼저 투표권을 얻었을까. 재외국민이다. 66년 12월 대통령선거법으로 국외부재자투표제도를 도입했다. 사실상 국외에 거주하는 한국 국적자에 대한 투표권을 인정한 제도였다. 그런데 72년 ‘통일주체국민회의법’에 의해 국외부재자투표제도가 폐지된다. 한참 뒤인 97년 일본과 프랑스에 거주하는 재외국민들이 헌법소원을 제기하지만 2년 뒤 헌법재판소가 합헌 결정을 내렸다. 이렇게 무산된 재외국민 투표는 2004년 일본·미국·캐나다 거주 재외국민들의 헌법소원 제기로 다시 불씨가 살아났다. 2007년 6월 28일 헌법재판소는 헌법불합치 판결을 내렸다. 재외국민의 선거권과 평등권, 보통선거 원칙을 위반한다는 이유에서다. 이에 따라 2009년 2월 국회에서 공직선거법이 개정됐고, 지난해 총선과 대선에서 재외국민 투표가 실시됐다.

# 2016년 지방선거 때부터 외국인 투표 도입

외국인 투표는 2006년 5월 31일 시행된 제4회 지방선거에서부터 도입됐다. 2005년 8월 4일 개정된 공직선거법은 선거권을 가진 연령을 20세에서 19세로 하향 조정하고 일정 요건을 갖춘 외국인에게도 선거권을 부여했다. 그러나 처음엔 투표권을 행사할 수 있는 외국인의 조건이 매우 까다로웠다. 국내에 거주하는 외국인 중 영주권(F5) 취득 후 3년이 경과한 19세 이상으로 한정했기 때문이다. 당시 투표권이 부여된 외국인 선거권자는 6726명. 투표할 수 있는 기회도 지방의원이나 단체장을 뽑는 데만 한정됐다. 2009년 2월 12일 공직선거법이 개정되면서 외국인의 참정권은 해당 지방자치단체 국내거소신고인명부에 올라 있는 외국인에게로 확대됐다. 선거일까지 계속해서 60일 이상 국내거소신고인명부에 올라 있는 25세 이상 외국인은 출마할 수도 있게 됐다. 그 결과 2010년 6월 2일 실시된 지방선거에선 선거권을 가진 외국인 수가 5만7128명으로 늘었다. 다만 이들은 아직까진 대통령·국회의원 선거에서 투표할 수는 없다.

# 2012년부터 선상에서도 투표

지난해 12월 13일 독도 경비대원들이 경북 울릉군 울릉읍 독도리 선착장에 마련된 투표소에서 18대 대통령 선거 부재자 투표를 하고 있다. [중앙포토]

투표일 배를 타고 먼 바다에 나가 있는 선원들을 대상으로 하는 선상투표제도의 역사는 2005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8월 18일 한나라당(새누리당의 전신) 김형오·장윤석 의원은 “선원들의 부재자 신고와 투표에 대한 절차와 방법이 미비해 사실상 투표를 할 수 없도록 하고 있다”며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했고, 2년 뒤인 2007년 6월 28일 헌법재판소가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리면서 선상투표의 길이 열렸다. 헌재는 “기술적 방법이 존재함에도 아무런 법적 장치를 마련하지 않고 있는 것은 헌법에 합치되지 않는다”고 이유를 밝혔다. 2012년 2월 29일 공직선거법이 개정된 뒤 18대 대선에서 처음으로 적용됐다. 첫 선상투표율은 93.8%였다. 투표는, 부재자 투표를 신청한 선원이 미리 팩스로 전송받은 투표 용지에 기표한 뒤 선관위에 팩스로 발송하고 용지는 밀봉해 선장에게 제출하는 식으로 이뤄진다. 기표한 투표 용지는 ‘실드(가림막) 팩스’를 통해 전송된 직후 봉합되고, 다른 부재자투표 용지와 함께 개표된다.

# 전자투표의 길 열릴까

이렇게 투표제도는 시·공간적 한계를 뛰어넘어 진화하고 있다. 2012년 12월의 18대 대선에 임박해 민주 당은 투표 시간 연장을 주장했다. 투표 시간을 연장하면 상대적으로 민주 당을 더 지지하는 직장인·대학생 등 젊은층의 투표율을 더 끌어 올릴 수 있다는 셈법이었다는 게 대체적인 해석이다. 같은 논리로 중장년층의 지지율이 높은 새누리당은 지지층이 대개 오전 중 투표하기 때문에 굳이 시간 연장을 추진할 이유가 없었다. 여야 합의는 무산됐다. 대신 올해 4월 재·보궐 선거에서 사전투표제가 도입되면서 사실상 투표 시일이 늘어나게 됐다. 민주 당으로선 투표 시간 연장을 주장할 명분이 줄어들었다.

 중앙선관위는 전자투표제도(터치스크린 전자투표제도)의 도입에 적극적이다. 스크린을 통해 투표를 함으로써 투표에 발생하는 사회적 비용 부담을 줄이고 투표와 개표의 신속성과 정확성을 높이자는 취지다. 그러나 해킹 등으로 인한 선거 결과 조작과 사전 유출 가능성, 계층 간 디지털 디바이드(정보격차) 문제 등으로 반대 여론이 만만치 않다. 현재는 당내 경선 등에만 제한적으로 사용되고 있다. 미래엔 전자투표를 넘어 스마트폰으로 집에서 대통령을 뽑는 날이 올 수도 있다.

김경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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