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천만 마이너리티’ 흡연자들 설땅을 달라

중앙일보

입력

"대세 아닙니까? 흡연구역이 없다고 고통을 호소하는 단계는 이미 지난 것 같습니다. 건물 안에서 담배 피우기를 포기한 거죠.”

지난 3월 서울 대치동 사옥(포스코센터)에 대해 금연 빌딩을 선언한 포스코의 한 간부는 “사회 분위기가 흡연구역을 다시 만들어 달랄 수 없는 쪽으로 가고 있는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흡연단속반까지 가동하고 있다는 보도에 대해서는 과거의 흡연구역에서 담배를 피우는 직원들에게 금연 빌딩임을 환기시키는 안내 도우미의 활동이 와전된 것 같다고 말했다.

삼성은 지난 5월1일부터 전 계열사 전 사업장에서 전면 금연을 실시하고 있다. 담배를 피우다 적발되면 인사상 불이익을 주기로 했다. 삼성의 한 부장은 ‘해당 공문에 적발되면 승진 심사 때 감점한다’는 구절이 있었지만 엄포성 경고 정도로 받아들이는 것 같다고 말했다.

동부화재·조흥은행·아시아나항공·동부제강·기아자동차·롯데쇼핑·금호타이어 등도 사무실에서 담배를 피우는 직원들에게 인사상 불이익을 주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신입사원 채용 때 흡연자들로부터 금연 각서를 받았던 금호의 한 직원은 2∼3년 전부터 각서를 요구하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금연빌딩으로 지정된 지 10년이 넘어 옥내 금연이 정착됐기 때문이다.

월간 현대경영이 최근 1백대 기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79개 기업이 금연을 실시하고 있다. 23개사는 사옥 전체를 금연 빌딩으로 지정하고 있다.

담배 피우는 사람들이 설 자리를 잃어가고 있다. 금연 빌딩과 금연구역은 늘어나는데 흡연구역은 제때 지정이 안 되고 있다. 있는 흡연구역도 담배 연기를 격리시키는 공간에 불과해 품위 있게 담배 피울 권리는 포기할 수밖에 없다. 흡연자들이 배우자와 자녀로부터 외면당한 데 이어 직장과 사회에서마저 냉대 받고 있는 것. 흡연구역의 지정은 건강증진법도 규정해 놓고 있다.

코미디언 이주일씨의 금연 캠페인으로 드라이브가 걸린 요즘의 금연 운동을 보노라면 마치 세상이 비흡연자와 흡연자로 재편되고 있는 것 같다. 1천만이 넘는 흡연자들이 ‘정서적 마이너리티’로 전락한 게 현실이다.

기업이 직원들에게 금연을 요구하는 배경엔 ‘그 정도 자기 절제도 못하는 사람들이 무슨 큰 일을 할 수 있겠느냐’는 생각이 깔려 있는 듯하다. 금연 경력 10년인 포스코의 유상부 회장도 금연할 때 “내가 나를 컨트롤할 수 없다면 어떻게 다른 사람들을 통솔할 수 있겠는가”하는 생각에 실패하면 죽기로 마음먹었다고 털어놓은 일이 있다.

직원 채용 때 금연을 강요하는 것은 인권 침해의 소지마저 있다. 흡연자의 취업을 제한하는 장벽으로 작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흡연자들은 의지가 박약한 사람이라는 주위의 시선을 감내해야 하는 한편 경제적인 부담도 늘었다. 지난 2월부터 1백50원으로 껑충 뛴 담배 부담금이 대표적이다. 정부는 이렇게 거둬들이는 연간 7천억원 이상의 건강증진기금(담배 부담금)을 파탄 지경에 있는 지역과 직장 의보의 재정에 충당하고 있다.

흡연자들이 금연 캠페인에 앞장서고 있는 정부의 속셈을 의심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금연 분위기에 눌려 담배 부담금 인상 움직임에 흡연자들은 변변한 저항조차 못해 봤다. 언제부터 나라에서 내 몸을 관리했느냐는 애연가들의 볼멘 소리는 잦아들고 말았다.

담배가 우리나라에 전해진 것은 1620년께 일본을 통해서다. 담배를 일본에 전해준 유럽에 담배가 처음 알려진 것은 1492년 쿠바에 상륙해 원주민들이 담배잎을 말아피우는 것을 본 콜럼버스에 의해서다. 고작 5백∼6백년의 역사를 지녔건만 우리 선조들은 퍽 오래된 사건을 호랑이 담배 먹던 시절의 일이라고 표현했다.

인류가 존속하는 한 담배가 사라질 것 같지는 않다. 이쯤에서 흡연족과 비흡연족이 공존의 지혜를 모색하는 것은 어떨까? 어쨌거나 술과 더불어 인류가 발견한 최고의 기호품인데.

출처:이코노미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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