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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중심사회] 4. 과학문화 정착시키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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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20면

과학문화는 개념이 매우 추상적이고 때로는 애매하다. 하지만 실천 차원에서는 비교적 분명히 정의할 수 있다.사회구성원이 과학기술을 중시하고 이해하고 사랑하는 가치관.신념.생활양식의 총체라고 볼 수 있다.

우리나라에는 외형상 과학기술은 있어도 국민들이 공유하는 과학문화는 대단히 빈약하다. 우선 사회 지도층은 물론이고 일반 국민들의 과학기술에 대한 관심과 이해도가 매우 낮다.

국민들은 보통 과학기술을 자신과는 별로 상관없는 과학기술자들의 몫으로만 생각한다. 이런 점들이 과학기술과 일반사회와의 틈을 벌리는 요인이다.

정부의 과학문화 관련 예산은 2002년 기준으로 모두 3백20억원이다. 이는 국가 연구개발 예산의 0.6%수준에 불과하다. 지금까지 정부의 과학기술 지원이 주로 유형의 하드웨어에 치중해 왔음을 의미하기도 한다. 이제는 무형의 소프트웨어에 눈을 돌릴 때다. 그 대표적인 것이 바로 과학문화다.

곧 출범할 신정부가 '과학기술 중심 사회'의 구축을 국정과제의 네번째로 제시한 지금이야말로 가장 적기라고 하겠다. 과학기술에 대한 국민적 신념체계를 형성하는 것은 21세기 과학기술 입국을 뒷받침해줄 수 있는 필수조건이기 때문이다.

과학문화사업을 보다 활발하고 체계적으로 전개하기 위해서는 '지원은 정부가, 주도적 역할은 민간이 하는 체제'가 만들어져야 한다.

하지만 당분간은 정부.공공부문의 선도적인 역할이 요구된다. 이를 위해 중점을 두어야할 과제는 국민들의 의식과 정서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는 대중매체를 최대로 활용하는 것이다.

최근 대중매체의 종류와 수는 엄청나게 늘어났다. 하지만 다루는 내용은 대부분 오락물이나 연예물 등이다. 과학기술과 관련된 프로그램이나 기획물은 찾아 보기 어렵다.

문제는 콘텐츠다.쉽고 재미나고 유익한 과학 콘텐츠를 다양한 장르별로 제작하여 각급 대중매체를 통해 수돗물처럼 공급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도 '과학콘텐츠야말로 과학문화확산을 위한 국가의 지적 자산이자 공공재이므로 정부가 이를 적극 지원.육성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날로 그 위력을 더하고 있는 인터넷의 적극적인 활용 대책도 시급하다. 과학기술 관련 종합포털사이트.인터넷방송.인터넷신문을 삼각축으로 삼아 질 좋은 콘텐츠를 24시간 제공할 수 있는 체제를 구축해야 한다.

현재 한국과학문화재단에서 운영하고 있는 포털사이트인 '(www.scienceall.com)'에는 약 50만명의 회원이 가입하고 있다. 이들이 모체가 되어 전국의 네티즌 2천5백만명 중 1천만명 정도가 가입, 커뮤니티를 형성할 수 있다면 우리나라 과학문화 확산에 불을 붙일 수 있는 '붉은 악마'역할을 단단히 할 수 있을 것이다.

인터넷을 통한 청소년 사이버 과학 탐구 활동을 강화해야 한다. 이를 초.중등교육의 공교육 과정과 연계시키면 온.오프 결합으로 과학교육에 시너지효과를 극대화 할 수 있을 것이다.

다양하고 내실있는 대중 이벤트를 가능한 한 많이 개최하여 과학기술 친화적인 사회분위기를 확산시켜야 한다.

각종 과학축제.전시회.경연대회.강연회.토론회.과학캠프 등 청소년과 일반 국민들이 과학기술을 쉽고 재미나게 접하게 하고 느낌과 감동을 줄 수 있는 과학문화행사를 전국에 걸쳐 지속적으로 펼치는 것이 주요 실천 방안이다. 여기에는 과학기술인들이 책임의식을 갖고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것이 필요하다.

과학 관련 시설물의 확충도 서둘러야 한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이 과학관과 과학센터다.

미국에는 전국적으로 2천여개 가까운 과학관이 있다. 우리나라엔 대덕의 국립과학관과 서울의 분관이 있고, 전국에 유명무실에 가까운 수준의 과학관 20여개가 있을 뿐이다.

프랑스의 중부 푸와티에란 도시에 있는 미래관(Futuroscope)은 과학관인 동시에, 교육연수와 예술과 레저가 결합된 종합적인 과학놀이 마당이다. 매년 1백만명 이상이 찾는 과학문화 명소이기도 하다. 현재 경기도 과천에 건립할 예정인 새로운 국립과학관도 프랑스의 미래관처럼 설계해야 한다.

아울러 전국 곳곳에 새로운 개념의 경제적인 '과학문화센터'가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 현재 '시민회관''문화센터' 등의 이름으로 활용도가 별로 높지 않게 운영되고 있는 전국의 각종 시설들을 개조.활용하는 방안도 고려해봄직하다.

인력과 투자라는 양대 수레바퀴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이러한 사업들은 효율적으로 추진되지 않는다. 인력의 경우 현재 과학커뮤니케이터.저널리스트.과학저술가.시나리오작가.전문PD.전시기획가 등 유능한 과학문화 전문인력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이들을 체계적으로 육성하기 위한 전문적인 교육 연수 프로그램을 설치해야 한다.투자의 경우 노무현 당선자의 공약이 지켜지면 해결될 것으로 보인다.

노 당선자는 국가 연구개발 예산의 3%를 과학문화 확산에 배분하겠다고 했었다. 여느 정권에서 볼 수 없었던 것으로 신선하기까지 하다. 아울러 민간의 투자유인을 위한 실리 있는 조세지원 등 인센티브대책도 적극 강구되어야 할 것이다.

과학기술 발전을 위한 투자 확대는 필수조건이다. 그러나 범사회적인 과학문화의 기반 없이는 무의미하다. 척박한 토양 위에서 무성한 숲이 형성될 수 없기 때문이다.

과학기술에 대한 국민적 수용과 지지가 없는 분위기에서는 과학기술인이 보람을 느낄 수 없다. 의욕도 샘솟지 않을 것이다. 우수 청소년들의 이공계 기피 현상도 치유될 수 없다.

이제 더 늦기전에 과학문화에 눈을 돌려야 한다. 새정부 출범과 더불어 새로운 패라다임에 의한 역동적인 과학문화운동의 전개가 기대된다.

최영환 한국과학문화재단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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