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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땅 밟아 봤으면"|김씨가 말하는「화태23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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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지난 2윌24일. 일본「요꼬하마」에 입항한 소련정기여객선「바이칼」호 편으로 귀환해온 김정룡씨(41·경북예천군용궁면)는 배에서내리자 마자「고향에 가봐야겠는데…』라고 울먹이면서 뒷말을 잇질못했다. 입국수속이 미비됐다하여 다시송환될 찰나, 가상륙허가가 내려 「이와끼」시에있는 처가에 화태생활 23년의 여장을 풀었다.
김씨의 일본인 부인「시우사꾸·기요꼬」여인(40)은『조선구경도하고 시아버님도 만나보고 싶다』면서 얼굴을 붉혔다.
부부에게「카메라」를 대자 밖에서 뛰어놀던 막내딸 영자양(8)은『애쿠! 사진찍는다』「로시아」말로 지껄이면서 방문을 젖히고 들어서는 것이었다.

<교포실태 잘몰라>
1945년3월24일 김씨는 다른 화태교포와 마찬가지로 징용으로 끌려갔다.「기요꼬」여인과 맺어지기는 김씨가 31살되던 58년-.
3년전, 그러니까「기요꼬」여인과 결혼한지 7년되던해 처남(「시우꾸·요시오」회사원)이 일본에 들어오라고 알려와 이른바「동반귀국」(배우자인 일본여성에 따른 귀국)으로 일본땅을 밟게됐다.

<여행엔 경찰허가>
「나이부치」탄광에서 일하다 목공으로 일자리를 바꾸었다는 김씨는 그곳에서 지칭되는「베즈그라지단스키」(무국적자)- 이들은『자기가 사는 구역밖에는 나갈수없고 나가자면 경찰허가를 받아야한다는데 좀처럼 그 허가가 나오지않아』화태교포실태에 관하여는 밝히지 못했다.
그러면서도 김씨는 같은 고향에사는 교포로서『조용식(함양출신), 송제동, 방용옥(구미출신), 배택원, 김용식-』한자는 배우지못해 발음만으로 꼽으면서『편지같은 글로 적힌것은 가지고 나올수없게 되어있어 각자의 사진뒷면에 조그마하게 이름만 적힌것을 가지고왔다』고했다.
화태에서도 특히「도요하라」라는 고장에 교포가 모여살고 있는 것 같고『무국적이라야 「사할린」을 벗어날 수 있다』고 하여 많은 사람들이 무국적을 지키고 있는 것 같다고 했다.
『무국적이라도 일터를 구하고 아이들을 취학시키는데는 별지장이없다』는 것이다.

<월수입 3백루불>
김씨가 걸친 짙은 감색의 허름한 양복의값을 물었더니 50「루불」(1루불일화4백원상당).
김씨가 목공일로 월최고로 벌어들이기는 약3백「루불」. 김씨의 5인가족으로 2백「루불」이면 식생활은 꾸며갈수있다고했다.

<기술자들은 우대>
쌀은 1킬로그램당 0·96「루불」그러나 구두 한켤레에 고급으로는 42「루불」이라면서 『기슬자는 대우를 받고있다』고 했다.
부인이 일본귀국수속을밟아 소련의 출국허가가 나오기는 지난해3월말, 올들어 2월에 소련당국이『빨리나가라』고 재촉하면서 출국허용기간을 3월8일로 마감지었다.

<증명서없이 떠나>
부인수속이 끝나야 남편의 일본입국신청수속을 밟을수있다고하여 차일피일 미루어왔던것이 갑자기 출국을 재촉받게되는통에『허둥지둥 떠나게되어 자기만 수속이 끝나면 되겠거니하여 그대로 떠났던것』이라고 부인은 말했다.
「요꼬하마」에 닿자 부부관계를 밝힐 이렇다할 증명서조차없어 하마터면 남편과 세아이중 두명은「나호트카」로 되돌아 갈뻔한것이다.

<전남편은 남긴채>
「사할린」을 떠날때 신분증을 제시하니까 소련당국은 신분증을 거둬들이고 빨간종이에 사진을 붙인 것을 주더라고했다.「나호트카」에 오니까 그 증명서의 반을 잘라서 사진이 붙은 쪽을 돌려주고 배에 올라타자 나머지 반쪽도 거두어 들이더라는 것이다.
김씨와 맺어지기전에「기요꼬」여인은 장수동씨(50·일본명「오야·지보꾸」)를 남편으로 삼았고 장씨는「사할린」에 그대로 살고있다한다. 가족중 「오야·히로시」군(24)은『사랑하는 여성이 있어남겠다』고 하여「사할린」에 남았고 큰딸「오야·마요미」둘째딸「오야·다까꼬」(16), 그리고 김씨 사이에 낳은 김용자(8)만을 데리고 돌아왔다.

<함께모여 아리랑>
지난해8월 고향에있는 둘째형 김만룡씨와의 일본을 거친 교신으로 어머니는 10년전에 돌아갔고 아버지는 신병으로 누워있으며 맏형 김상용씨는 사망, 동생이 고향에 살고있다는 소식을 전해듣고있다.
『「사할린」의 우리가 살고있던 고장에서는 결혼식·생일잔치니하여 한달에 한번정도는 모여앉아「아리랑」이며「도라지타령」을 부른답니다.』 김씨는 또「사할린」교포들이 서울방송을 귀담아 듣고있다면서『올해초 하룻날인가요 금년에 귀환문제가 어떻든간에 해결될것같다는 투의 방송소식에 힘입고있다』고 말하는 것이었다.
김씨와 같은편으로 동향의 권원칠씨(북해도「아바시리」시「아자오가기」27의4-15)도 역시 동반귀국으로 일본땅을 밟았다. <동경=강범석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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