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신시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사람을 보거든 도둑놈으로 알라』는 말이 있다. 속았건 안 속았건 증거야 있건 없건 일단 의심하고 보자는 말이리라.
눈발치던 오후 만원「버스」로 미도파 앞을 지날때다. 내 앞에 젊은 부인이 큼직한 보퉁이를 들고 한손으로 잡음대를 매달리듯 붙들고 있다. 자릴 양보하려다 보퉁이만 잡아 끌어다 올려놓고 떨어지지 않게 안았다. 그러자 그 부인은 놀란듯이 잡아맨 보퉁이 틈새로 손을 넣더니 한참만에 빨간 지갑을 꺼내 가지고는 손안에 꼭 쥔다.
○…나는 창밖으로 고개를 돌렸다. 무안하고 불쾌했다. 창밖은 몸부림치는 눈발인데 갑자기 구정때 시골서 돌아오던 서울역이 생각되었다.
아이를 업으랴, 짐을 들랴 쩔쩔 매며 내릴 준비를 하던 부부, 짐을 들어 주겠다고 선뜻 나서니 사양이 아니라 거절하는 듯하던 눈빛, 성급히 내뒤를 따르며 짐을 내게 왜 내어주었느냐고 탓하던 부인의 가만한 말소리와 미안하다는 말한마디 제대로 못하고 쫓기듯「택시」 로 떠나던 일이 자꾸만 생각났다.
○…친절은 옛날에 죽어버리고 대가 없는 친절이란 의심과 경계심만 날뿐인가. 모두모두 착해지자고 목청 돋우고 싶고, 잠깐 지나가는 세상 진실하고 착하게 살자고 구름끝에 내소리 띄워보고 싶다. (유문동·26세·사원 서울상도동 국민주택14)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