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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취재일기

한국근대사 인물시집, 뜻은 좋았지만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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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하현옥
문화스포츠부문 기자

한국 시단의 중심 기구인 한국시인협회(회장 신달자)가 시집 『사람』(민음사)을 엮어냈다. 한국근대사에 주요한 발자취를 남긴 인물 112명을 시의 세계로 초대했다. 이른바 어른이 실종된 시대, 20세기 한국사의 주요 인물을 문학으로 끌어들인 시도가 신선했다.

 시집 서문에 이런 대목이 있다. “우리 근대사의 주요한 인물들이 남긴 빛과 그늘을 문학의 눈으로 살펴보고자 했다.” 통상 기성체제와 각을 세워왔던 우리 시단의 이력을 놓고 볼 때 이례적인 행보였다. 일방적 비판이 아닌 객관적 조명이라는 점에서 일단 반가운 ‘반전(反轉)’이었다.

 신달자 시인협회장은 13일 기자간담회에서 “각 인물을 정의하고 재단하기보다는 그들의 삶과 선택에 대해 ‘왜?’라는 질문을 던지는 데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작 시집에 실린 일부 작품은 이러한 취지를 무색하게 했다. 이승만·박정희 전 대통령, 이병철 전 삼성 회장, 정주영 전 현대그룹 회장 등을 미화했다는 오해를 줄 수가 있었다. 한국의 오늘을 만드는 데 큰 기여를 한 그들의 업적 일부를 진영논리처럼 폄하하는 것도 문제지만 지나친 칭송은 되레 그들의 객관적 평가에 짐이 될 수도 있다.

 예컨대 이태수 시인은 시 ‘박정희’에서 ‘5·16 쿠데타와 유신 독재가 없었다면/ 민족중흥과 경제 발전은 과연 어떻게 됐을는지요/ 국민이 가장 존경하는 대통령-, 누가 뭐래도/ 당신은 빛나는 전설, 꺼지지 않는 횃불입니다’라고 썼다.

 신달자 시인은 교보문고 창업자 신용호 회장에 대해 이렇게 썼다. ‘마마-맘/ 대한민국에 태어나는 아이들은 첫말로 맘마를 배운다/ …(중략)…/ 그다음에는/ 꼬보 꼬보 고보무은 고보무은/ 교보문고를 배운다.’

 개별 인물에 대한 묘사는 시인 고유의 영역이다. 시인협회가 감수 과정을 거치지 않았던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그런데 이번 시집의 무게중심은 빛과 그늘 중 빛 쪽으로 기울어진 모양새다. 꼭 인물의 공(功)과 과(過)에 대해 물리적 균형을 맞춰야 한다는 뜻은 아니지만 시라는 그릇을 통해 인물을 재창조하면서 시적 상상력을 발휘하는 데 한계를 드러낸 것은 안타깝다. 인물시라는 제약을 감안하더라도 칭찬 일색의 시는 오히려 역효과를 낼 수 있지 않을까.

 시집 편찬에 참여한 이근배 시인은 “고은 시인의 『만인보』가 개인의 생각을 옮긴 것이라면, 이번 시집은 시인협회가 공적으로 주제를 잡아 시로 쓴 것”이라고 말했다. 그런 만큼 시간이 들더라도 문학적 상상력을 더 발휘해야 하지 않았나 싶다. 설립자의 시가 수록된 삼성·현대자동차·포스코·LG·SK텔레콤 등 대기업이 협찬자로 참여한 것도 뒷맛이 말끔하지만은 않으니 말이다.

하현옥 문화스포츠부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