맬컴 X 유일한 혈육 허무한 죽음 28세 외손자 술값 시비 끝에 참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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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맬컴 X(左), 샤바즈(右)

9일(현지시간) 밤 멕시코시티의 유흥가 가리발디 플라자의 한 술집. 젊은 여성 호객꾼에게 이끌려 술집에 들어간 맬컴 샤바즈와 미겔 수아레스는 계산서를 보고 깜짝 놀랐다. 여자와 농담하며 맥주 몇 잔을 마셨을 뿐인데 1200달러(약 130만원)가 청구됐기 때문이다. 말도 안 된다고 항의하자 총을 든 종업원이 나왔다. 그 자리에서 샤바즈는 흠씬 두들겨 맞았고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바로 숨졌다.

 1960년대 마틴 루서 킹 목사와 함께 흑인 인권운동의 양대 산맥이었던 ‘맬컴 X’의 유일한 혈육인 외손자 샤바즈가 28세의 짧은 생을 멕시코시티 유흥가에서 마감했다고 뉴욕타임스(NYT)가 11일 전했다. 샤바즈의 삶은 외할아버지와 닮았다. 맬컴 X가 65년 뉴욕에서 암살됐을 때 샤바즈의 엄마는 네 살이었다. 프린스턴대에 진학했던 엄마는 대학을 그만두고 파리로 갔다가 알제리인 남편을 만나 샤바즈를 낳았다.

 미국으로 돌아온 엄마는 아버지의 원수를 갚기 위해 살인 청부업자를 고용했다가 체포됐다. 이후 엄마와 떨어져 외할머니 손에서 자랐던 샤바즈는 ‘맬컴 X’라는 거대한 유산과 가난한 흑인 소년이란 현실 속에서 갈등했다. 거리의 갱들과도 어울렸던 그는 열두 살 되던 97년 반항심에 외할머니 아파트에 불을 질렀다. 병원으로 실려가면서도 “샤바즈”를 절규하며 걱정했던 외할머니는 끝내 화상으로 사망했다.

 소년원에서 1년6개월을 보내면서 샤바즈는 늘 죄책감에 시달렸다. 2003년 NYT와의 인터뷰에서 그는 “외할머니가 불을 피해 빠져나올 줄 알았다”고 자책했다. 이후 그는 소년원에서 외할머니의 영혼과 만나 용서를 받았다고 말했다. 그러나 샤바즈는 출소 후 강도와 절도를 되풀이하며 감옥을 전전했다. 그러나 20대에 접어들면서 외할아버지 맬컴 X처럼 이슬람교에 빠져들었다. 맬컴 X의 후광으로 아프리카와 중동에서 칙사 대접을 받았던 그는 리비아의 무아마르 카다피와도 만났다. 이후 그는 미 연방수사국(FBI)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철이 든 그는 인권운동가를 자처했다. 미국 전역과 전 세계를 돌며 청소년 교화에 나섰다. 그가 멕시코시티에 갔던 것도 미국에서 추방된 이민노동자 지도자 수아레스를 돕기 위해서였다. 멕시코시티에 있는 동안 우연히 들른 이발소에서 팔에 맬컴 X 문신을 하고 있는 무명 랩 가수를 만난 그는 미국 진출을 도와주겠다고 나서기도 했다. 그러나 랩 가수를 돕기 위해 로스앤젤레스(LA)로 떠나기 직전 멕시코시티에서 들른 술집에서 어이없는 죽음을 맞았다. 유족으론 딸과 어머니가 있다고 워싱턴포스트가 전했다.

뉴욕=정경민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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