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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불교발상의 땅|선산고분군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신라불교의 발상지경북선산이 거기 찬란하게 꽃피었던 옛모습을 처음으로 세상에 드러냈다. 단국대박물관고적 조사대는 1월하순의 12일간, 선산군내산과 계곡을 샅샅이 뒤져 40여점의 유물을 찾아냈다. 그중엔 국보 및 보물급에 속하는 것도 5점. 「삼국사기」와「삼국유사」의 단편적인 기록을 입증하는「당당한불교의 성지」임을 밝혀냈다.
단국대 정영호, 차문섭교수가 인솔한 10명의 조사대는 폐허화한 성지를 옛 순례자들 처럼 답사했다.

<아도화상이 포교>
선산은 1천5백여년전(눌지왕때) 아도 화상이 처음으로 신라땅에 불교를 심기시작했다는 기점. 경주다음 갈 만큼 유적투성이 임에도 세상의 이목에서 소외된지 오래며, 지금 유적들은 대부분이 방치돼있고 남아있는 너덧절마저 꾀죄죄한 한 사. 문화재로 지정보호되고 있는게 군내에 한 점 없음은 물론이다.
선산에서 불교유적의 중심지는 읍에서 북으로 낙동강을 건너 15킬로 떨어진 냉산 도리사. 이냉산 아래 옛 일선주가 자리잡고 있었고, 고구려에서 건너온 아도화장이 머물러 포교했다는 모례의 집과 아도가 잠적했다는 굴실도 모두 냉산을 둘러싼 얘기다.
조사대는 도리사 극락전 앞뜰에 놓인 화엄석탑을 발견하고 환성을 터뜨렸다. 이것은 일찍이 우리나라 석탑가운데 찾아볼 수 없는 이채로운양식.
기단은 19장의 판석으로 감싸 단을 모으고 탑1·2층은 네모진 치석을 포개 쌓았는데 옥개석의 전각이나 받침의 층단이 전탑의 느낌이다.

<탑높이4·3미터>
3층은 한돌로 다듬고큼직한 노반위에 연판을정교하게 새긴 앙화와 보주가 덩그라니 올랐다.총고4·3미터 『그렇게 소중한 것인 줄 몰랐군요』주지 이도우씨의 말이다.
정교수는 인도「산치」탑의「이이디어」에서 온 것이 아닌가 추정하면서 이 탑이 왜 여기에 세워졌는지 또는제작연대등 신중히 연구할 문제라고 말했다.
현도리사는 옛날 여러말사가운데의 하나인 금당암. 본사와 기타 말사는 흔적조차 남아있지 않다. 이밖에도 냉산주위에는절터가 계곡마다 산재한다. 그분이 많은 낙산동의 3층석탑은 아마 옛일선고을의 상징적인 탑이 아닐까. 높이7미터의 거대한 신라탑으로 전탑처럼 다듬은 석탑이면서도 부여 정림사탑의 헌칠한 인상이다. 목탑에서 석탑으로 옮아가는 정형양식이 마련되기 이전의 시원양식이라는 정교수의 설명이다.

<절터와고분 산재>
냉산너머 주륵근사터엔 불국사 석가탑만한 석탑이 있었다. 넘어진 탑돌을 깨어 묘석으로 다듬은 일선김씨네의 정소리만이 요란하다. 여차니나루옆 원동3층석탑도 이미 그들의 사당축대가 돼 산산조각. 조사대는 분함을 참지못해 가슴을 쳤지만 그것이 다시 탑으로 묶어지기엔 벌써 늦었다.
선산읍내 죽장사 5층석탑은 현존하는 우리나라 석탑 중 가장 높이 솟은 12미터. 기단일부가 허물어지긴했어도 통일신라 성대의 당당하고 장중한모습이 역연하다. 1층에마련한 감실이 웬만한 방의 크기.
해평보천사 석불은 절반이 흙에 묻혔었다고한다. 근년에 불신도 전청련화여사에 의해 단간 의짓간을 마련, 봉안해있다.
높이2·95미터. 불상자체도 좋으려니와 좌대와 광배에까지 불상과 무늬를 가득 아로새긴 정교한 걸작품이다.

<천년굽어본 불상>
구미 금오산-해발978의 산정에 위치하는 마애보살입상은 높이5·5미터. 고격이 뚜렷한 장중한 모습으로 낙동강 허연 물줄기를 짐짓 굽어보며 천년을 지켜서있다.
정영호교수는 군내30여개소 절터를 돌아보고『대부분이 들판에 있음은주목할사실」이라고 말한다.
문화재위원장 김상기박사는 이번 조사의 중요성을 역설하면서 중요문화재에 대한 지정, 보호조처를 긴급히 취해야겠다고 다짐했다.

<이종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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