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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정밀수」소탕전선을 따라|쾌속정 9척이「눈」|45일에 6척 나포「이즈하라」중심으로 정보수집도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H·M·K·K H·M·K·K 여기는 H·M·W·S H·M·W·S북위1백29도 남경 3백40도 해상에서 용의선 발견 추격 중』-이곳은 일본 대마도 남단「쓰쓰」만 서남5마일 해상. 마산세관소속밀수감시선 「독수리10호」는 마산세관충무출장소에 설치된 해상밀수근절통합본부무전실에 용의선 발견 사실을 알렸다. 때는 1968년 1월12일 정오.
11일 정오 충무항을 출발한 밀수감시선 모선서강호(53톤·시속11마일·2백50마력·선원11명) 와 독수리10호 (10톤·시속18마일·선원5명)는 11일하오5시 대마도 「오오구찌」앞 5마일 해상에 도착, 공해를 순항하면서 대마도 「이즈하라」를 18일 밤 또는 19일 새벽에 출발하리라는 밀수 특공선이 나타나기를 기다렸다.

<고깃배 틈에 잠입>
이날의 해상기온은 영하10도 파고는 3미터.
선실엔 구공탄 난로가 타고있지만 장갑을 낀 손을 입김으로 녹여야만했다. 마산세관 충무출장소 총무계장 정도씨는 밤을 꼬박 새웠지만 그래도 망원경을 놓지 않았다. 부근엔 약30척가량되는 일본의 고기잡이배들이 보였다. 일본어선들 틈에서 밀수 특공선을 가려내기는 그리 어렵진 않다.「브리지」색이 다르고 일본 배는 신조선 이지만 밀수선은 낡았기 때문에 시야5마일의 망원 「렌즈」에 잡히기만 하면 분간할 수가 있다.

<무장한 밀수선도>
용의선 발견의 무전연락이 끝나자 독수리10호는 모선인 서강호를 떠나 용의선에 접근하기 시작했다. 65년8월27일 대마도 앞 바다에서 밀수선과 총격을 벌인 경험을 살려 접근해 가면서 용의선박의 무장여부와 대항가능성도 재봐야 했다. 독수리10호의 선수가 일본 영해쪽으로 향하고 쾌속으로 달리기 시작하자 한국 쪽으로 향하던 용의선은 재빨리 뱃머러를 돌려 대마도로 되돌아갈 자세다. 그러나 시속 18마일의 감시선에 따르지 못했다. 용의선박 옆에 바싹 다가선 독수리10호는 우선 감시원2명이 「카빈」과 45구경권총을 꺼내 위협하면서 그 선박에 옮겨 탔다.
손을 번쩍 든 민승호 선장과 선원3명은 선창에 나와 섰고 마산세관감시원 김종항씨와 정도씨는 민성호에 대한「서치」를 시작했다. 「담불」안은 양복지 두필을 한뭉치씩 묶은 39뭉치의 밀수품 (싯가6백만원) 이 챙겨있었다. 독수리10호는 이래서 거뜬히 밀수선을 나포하고 관계자 4명에게 포승을 건 후 「트랜시바」로 모선인 서강호를 불러 밀수선 검거사실을 보고하고 이 사실은 바로 통합본부에 무전으로 알려졌다.
해상밀수근절통합지휘본부 (반장 대검 김선검사·부반장 서울고검 이주식검사) 는 작년12월1일 연말·연시 성수기를 앞둔 남해의 밀수특공대와 외항선박의 밀수를 조직적이고 기민하게 단속하기 위해 대통령지시에 따라 마산세관충무출장 소안에 설치되었다. 이 통합본부에 상주하는 이주식검사 지휘아래 세관·경찰·해군·중앙정보부 요원들이 파견되어 중점적인 해상봉쇄, 소탕작전을 벌이고있다.
더우기 오는1윌30일 구정을 앞두고 1월15일부터 다시 본격적인 해상작전이 전개되고 있다.

<4개진으로 분담>
해상에는 해경소유의 모함 (6백톤급) 을 중심으로 해경소유의 2백톤급 경비선과 마산 세관소속 서광호, 해군에서 차출된 PT2척을 모선으로 하여 독수리 5호 6호 8호 9호 10호 11호 12호 16호 18호 등 9척의 쾌속감시정이 출동하고 있다.
해상작전의 제1진은 일본 대마도5마일 밖해 상을 순회하며 특공 밀수선의 한국 잠입을 감시하고 제2진은 남해세존도에서 홍도에 이르는 삼천포·충무·거제 앞바다에, 제3진은 거문도에서 남해 미조리에 이르는 해남·고흥·여수 앞바다에, 제4진은 장승포에서 해운대 앞바다에 이르는 부산잠입선을 봉쇄하기 위해 주야로 해상을「패트롤」하고 있는 것이다.
통합본부는 해상「패트롤」과 양륙용의 지점의 감시외에 수시로 일본대마도 「이즈하라」 항을 중심으로한 첩보작전도 꾸며야했다.


그 동안 선원 가장한 공작과 긴급피난을 가장한 공작, 공작원의 무선 연락 등 첩보작전을 통해 대마도에 정박중인 밀수선의 실태를 파악할 수 있었고 이들 밀수선의「D데이」를 미리 포착하여 지난 19일의 해상나포작전을 성공시키기도 했다.
지난 10일 본부무전실에는 대마도에 잠입한 공작원으로부터 『민승호· 홍진호의 두 밀수선이 18일부터 19일 사이에 한국을 향해 떠난다』는 첩보무전이 입전되어 무난히 이들을 검거하게 되었었다.
통합본부는 1월1일 창설된 후 지난15일까지 45일 동안에 밀수선6척을 나포하고 그밖에 밀수품 2건을 적발, 양복지, 화장품 등 싯가 1천7백82만원 어치의 밀수품을 압수했으며 20일 현재의 첩보로는 「이즈하라」에는 한척의 밀수선도 정박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왕년의 「밀수왕」이젠 감시원으로>
기자가 동승한 밀수감시선 독수리10호의 선장겸 기관장인 김종항(32)씨는 전에 밀수쾌속정 광덕호 (140마력·18노트·5톤)의 선장이었다. 그는 64년 4월24일부터 밀수선장으로 있으면서 대마도를 8회나 왕복한 범죄자. 65년9월 기자가 대마도 「이즈하라」에 취재차 갔을 때 김씨는『밀수선장의 악동에서 벗어나 자수하여 대한민국의 품에 안기겠다』고 울먹이며 호소한 일까지 있다.
그후 김씨의 『자수하겠다』는 신념이 지상에 보도되고 밀수합동수사반의 공작원이 「이즈하라」에 가서 김씨의 자수서를 받아 돌아온 후 65년11윌18일 하오11시 김씨는 「이즈하라」부두에 매두었던 광덕호의 끈을 끊고 단신 현해탄을 넘어 19일 상오3시 충무에 도착, 당시 부산지구밀수합동수사반의 이창우검사 앞에 자수하였었다. 특공선을 끌고 자수한 김씨는 그해 12윌20일 검찰에서 기소유예처분을 받고 「범죄자」란 오명에서 벗어나 66년 2월26일부터는 그의 용감성과 기술이 당국에 인정되어 마산세관 삼천포 출장소의 밀수감시선 기관장 (5등급기능직 공무원)으로 취직, 현재까기 무려 5백회나 해상에 나가 밀수소탕전을 벌였다는 것이다. 충무출장소로 옮긴 김씨는 처와 1남1녀의 가장으로 두칸짜리 셋방이지만 『이젠 떳떳하다』면서 민승호 나포의 공까지 세웠으나 밀수꾼이었던 K모씨가 옥중에서『평생 살 놈도 아니고 종항이 언젠가 봐주겠다』고 벼르고있어 옛동업자들의 보복이 두렵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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