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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의 선물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함박눈이 펑펑 쏟아지던 날. 한손에 선물꾸러미를 들고 아빠가 돌아오셨다. 눈사람이 되어 들어서는 아빠보다 선물꾸러미로 신경이 쏠렸다. 며칠 전에 내의 한벌을 샀으면 하고 혼자 말을 했더니 그걸 사가지고 오셨구나 하는 고마운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방에서 꾸러미를 풀어헤친 순간 그런 고마움은 무참히 깨어졌다. 맏이와 막내의 털옷뿐이었다. 야릇한 서운함에 얼굴이 달아올랐다.
결혼한지 16년. 아들 셋, 딸 하나를 얻고 살아오는 동안 소박한 입성, 거친 음식으로 잇대어 왔다. 검소 절약만이 제일이라는 아빠의 주장만을 믿고 살아왔다. 그런데 오늘 일은? 섭섭함이 한꺼번에 밀려온다. 이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힐끗 나를 보던 아빠가 옷을 갈아 입다말고『오늘 논 계약했소. 세마지기…돈이 좀 모자랄 것 같은데』라고 말했다.
이 소리에 나의 감정은 혼란을 일으켰다.『애들 것 외엔 내년 수확 때까지 긴축정책이오』 - 내 마음을 궤 뚫어 본 듯 웃으면서 두 번째 던져오는 아빠의 말에 나는 당혹하면서도 스르르 서운함이 풀리는 것을 의식했다. 요새 말하는 자영농인 우리가 2년 전에 논을 사고 1년 걸려 또 한번 논을 산것이다. 나는 애써 침착 하려했다. 그러면서 다시 한번 마음을 비워놓고 아빠의 주장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백이현·38세·주부·전남 나주군 나주읍 남외동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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