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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한복판 '땅콩한옥'… 제비도 놀다 갑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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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로버트 파우저 교수가 다락처럼 한층 높게 만든 ‘누마루’ 한 편에 앉았다. 중정 벽면의 ‘하하나무’가 ‘ㅎ’자 꽃을 흐드러지게 피웠다. 주인장이 생물처럼 아끼는 나무다. 한글디자이너인 안상수 전 홍익대 교수의 작품이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님과 남’은 점 하나 차이입니다. 집도, 건물도 마찬가지입니다. 창 하나, 문 하나에 분위기가 달라집니다. 아이디어가 빛나는 우리 주변의 공간을 순례하는 ‘공간의 재탄생’을 시작합니다.

서울 서촌 골목에 들어선 순간 수십 년 전 과거로 이동했다. 경복궁의 서쪽 동네인 서촌(체부동·효자동·옥인동 등 15개 법정동을 아우른다)은 작은 도시한옥이 좁은 골목길을 따라 다닥다닥 붙어 있다. 인왕산을 마주한 골목집중에서 아직 나무 대문에 손때가 끼지 않은 새집 앞을 아침부터 서성거리는데 행인이 불쑥 묻는다. “안에 기척 없어요? 형님 아직 안 일어나셨나. 그런데 어디서 오셨어요?”

 건너건너 파란 대문 집에 산다는 동네 동생이 동네 형 집에 찾아온 손님을 궁금해한다. 아까부터 제비 한 마리가 기와지붕 사이를 낮게 비행하고 있다. 서울인데, 서울 같지 않은 풍경이다.

욕실·주방·거실 ㄷ자로 이어진 ‘파격’

어락당의 ‘ㄷ자’ 실내공간에는 칸막이가 없다. 파우저 교수가 앉은 곳은 ‘누마루’다.

 로버트 파우저(52) 서울대 국어교육과 교수는 서촌에 매료돼 2011년 도시한옥 한 채를 샀다. 주소지로 따지면 종로구 체부동 118번지의 이 집을 4개월간 매만져 올 2월 이사했다. 대지면적 69㎡(약 21평), 건평 40㎡(약 12평)의 작은 한옥의 이름은 ‘어락당(語樂堂)이다’. ‘언어를 즐기는 집’이니 외국인으로써 처음으로 서울대 국어교육과 교수가 된 미국인 주인장의 명성에 걸맞다.

  파우저 교수가 대문을 성큼 연다. 보통 한옥이라면 대문 뒤로 마당이 나와야 하는데 아파트처럼 신발을 벗는 현관 공간이 등장한다. 이어 ‘ㄷ자’형 실내공간이 나오고, 그 너머 직사각형의 중정(中庭)이 있다.

아자(亞字)창엔 불투명한 곰보유리를 복원했다. 투명한 유리에는 옛 서촌의 지도를 그렸다.

 어락당은 ‘대문-안마당-쪽마루-내부 공간’으로 도식화된 기존 한옥의 공간을 현대적으로 재구성했다. 마당을 거쳐야 하는 한옥의 불편함을 없애고자 ‘ㄷ자’ 실내공간을 하나로 연결했다. 공간을 칸막이로 가르지 않은 덕에 작은 한옥에 여러 공간을 고루 담을 수 있었다. ‘욕실-주방-거실-안방-누마루’가 ㄷ자 공간에 주르륵 이어진다.

 그렇다고 마냥 현대식으로만 지은 건 아니다. 집 바깥 담벼락은 육면체 돌인 사괴석(四塊石)을 쌓고 그 위에 붉은 벽돌을 올려 다른 도시한옥의 담벼락과 어우러지게 했다. 사괴석은 철거된 종로구 익선동의 요정 오진암의 돌을 고재(古材)상에서 구해 썼다. 유리창은 1970년대까지 도시한옥에 남아 있던 아자(亞字)창과 우둘우둘 불투명한 곰보유리를 복원했다. 대목장인 황인범 서울한옥 대표와 대수선에 들어가기 3개월 전부터 점심·저녁을 함께 먹으며 집을 구상했다.

 파우저 교수는 “동네 사람들이 우리가 밤낮으로 붙어 다니는 걸 보고선 연애하느냐고 물을 정도였다”고 했다.

공사 맡은 대목장 “까다로움의 절정”

황 대표는 “파우저 교수는 이제껏 봐왔던 건축주와 달리 자신이 원하는 것을 처음부터 끝까지 정확하게 요구하며 까다로움의 절정을 보여줬다”라며 웃었다. 어락당 거실 책장에 빼곡히 차 있는 한옥 관련 책은 단순한 장식품이 아니었다.

 어락당의 파격적인 공간 배치에 대한 전문가의 평가는 긍정적이다.

 “1~2인 가구가 늘고 있는 현실에서 최소 규모의 한옥이 어떤 모습인지 알게 한 집이다. 작은 집 두 채를 잇대어 건축하는 ‘땅콩집 한옥’도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장순용 서울시문화재위원회 위원)

 “생활한옥으로 지어진 집들은 부재와 공간이 커서 생활하는 사람에게 적합하지 않은 경우가 있다. 어락당은 자신의 몸과 생활에 꼭 맞는 집이 어떠한 것인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김종헌 배재대 건축학부 교수)

 어락당을 못마땅하게 바라보는 시선도 있다. 어락당이 전통한옥에 비해 처마가 짧은 도시한옥을 그대로 재생한 데다, 공간도 전통에서 벗어났다는 이유에서다. 이에 대해 파우저 교수는 한옥의 기준을 조선시대 한옥에만 둬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다.

 “일각에서는 일제강점기 도시계획 과정에서 잘게 쪼개진 필지에 맞춰 지은 도시한옥 자체를 부정하는데, 도시한옥도 당시의 삶을 고스란히 반영한 한국 한옥의 모습입니다. 1930년대 도시한옥촌이었던 북촌을 복원하면서 원래 모습 대신 조선시대 한옥으로 복원하는 모습이 안타까워요.”

 파우저 교수는 1983년 어학연수로 방한하며 한국과 첫 인연을 맺었다. 영어·국어를 가르치며 한국에서 12년을 보냈다. 어학연수할 때 살았던 혜화동 한옥 집이 좋아 한옥에 관심을 가졌고, 2009년부터 서촌에서 살면서 서촌 지킴이로 거듭났다.

난 동네 아저씨 … 내 공간 지키고 싶다

 그가 대표적으로 펼친 운동이 시인 이상의 통인동 집터 보존운동이다. 그렇게 서촌 도시한옥 재생을 줄곧 이야기하다, 실제로 도시한옥 살림집 주인이 됐다. 남의 나라 동네 지키기 운동에 왜 그렇게 관심이 많으냐고 통박을 놓으니 싱글싱글 웃던 그가 단호해진다.

 “외국인이라고 소극적인 주변인으로 살아야 합니까. 나도 같은 동네 아저씨에요. 관광버스가 동네에다 마음대로 주차하면 화나서 민원 하는 사람입니다. 굳이 한옥을 지키려고 한 것이 아니라, 내가 살고 있는 주거 공간과 그 속에서의 삶을 지키고 싶었을 뿐입니다.”

글=한은화 기자
사진=권혁재 사진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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