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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연금 개혁 시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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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프랑스 정부가 인구 고령화로 붕괴 위기를 맞고 있는 연금제도 수술에 나섰다. 장피에르 라파랭 프랑스 총리는 3일 자문기구인 경제사회위원회에서 연금제 개혁 논의의 공식 개시를 선언했다.

프랑스 전역 1백여개 도시에서 35만명 이상의 근로자들이 연금제 개혁에 반대하는 대대적 시위를 벌인 지 이틀 만이다. 라파랭 총리는 7월 말까지 개혁법안을 통과시킬 방침이지만 과거 정권붕괴를 초래했을 만큼 어려운 과제여서 성공 여부는 미지수다.

◇배경=고령화에 따른 경제활동인구 감소 등으로 연금제 운영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프랑스는 90년대 초반부터 개혁을 시도해왔으나 국민적 합의 부족으로 번번이 실패했다. 에두아르 발라뒤르 총리 내각 시절인 93년 민간부문 연금제 개혁을 행정명령으로 시도한 적이 있으며, 95년 알랭 쥐페 전 총리는 공공부문 연금제 개혁을 추진했다.

쥐페 총리의 개혁은 대규모 반발에 부닥쳐 결국 우파 정부의 붕괴를 초래했다. 이어 우파의 자크 시라크 대통령과 동거정부를 구성한 리오넬 조스팽 총리의 사회당 정부도 연금제 개혁을 공약으로 내걸었지만 결국 손조차 대지 못했다.

◇문제점=연금제를 유지하려면 앞으로 4년 동안 공공부문에만 매년 10억~15억유로(약 1조2천억~1조8천억원)를 쏟아부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분석했다. 민간부문의 경우도 2009년까지만 유지가 가능할 뿐이며, 손을 쓰지 않는다면 2040년까지 5백억 유로의 적자가 발생할 전망이다.

현행 연금제가 부문별로 들쭉날쭉인 점도 문제다. 공공과 민간 부문 근로자들의 평균 연금납부 기간은 각각 37년과 40년으로 3년이나 차이가 나며, 일부 공공부문은 법정 퇴직연령인 60세 이전 연금 수혜가 보장된다. 연금 수혜금액도 공공.민간 부문의 차이가 크다.

◇전망=연금제를 개혁해야 한다는 공감대에도 불구하고 부담 증가와 혜택 축소를 의미하는 개혁이 가시화될 경우 대규모 저항에 부닥칠 것이 뻔하다. 프랑스 근로자들의 일반적 요구사항은 60세 정년퇴직, 최종월급의 75% 연금 보장, 37년6개월 연금 분담금 납부 등이다.

하지만 경제여건상 프랑스 정부가 약속할 수 있는 건 60세 퇴직뿐이다. 라파랭 총리는 "공평하고 현실적인 원칙에 따라 2020년까지 점진적인 개혁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프랑스 사회연대 제도의 근간인 연금제를 구하기 위해 이기주의를 극복하고 정의와 용기를 발휘해달라"고 원론적으로 호소하는 것 말고는 특별한 묘안이 없어 보인다.

파리=이훈범 특파원 <cielble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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