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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개혁의 앞장 미대심원|행정·입법부가 못한 일을 법의 힘으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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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흔히 법은 보수적이라 한다. 그것은 법이 일반적으로 발전하는 사회의 앞장을 서기보다는 뒤를 따라가기 때문이다.
그래서 법을 집행하는 사법 기관은 사회 발전에 필연적으로 수반하는 불의와 부정을 교정하고 제거하는 역할을 하게 마련이다.
그런데 미국에서는 요즘 연방 최고법원인 대심원이 헌법 해석을 통하여 사회 개혁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어 학계와 의회 및 법조계에서까지 찬반 논란이 심심찮게 일고 있다.
대심원이 미국 사회에 개혁을 가져오게 하고 있는 것은 인종차별 문제를 둘러싸고 여러 가지 새로운 판례를 남김으로써 우리 한국인에게도 적지 않은 인상을 남겼다.
1954년 대심원이 공립학교에서 흑인 학생을 차별하는 것은 위헌이라고 판시하여 미국내의 인종차별에 역사적인 전기를 가져오게 한 사실은 기억에 새롭다.
그러나 흑백차별을 위헌으로 판시한 대심원의 법률해석은 이 문제를 둘러싼 연방의회의 정치적인 노력이 실패를 거듭한 끝에 사법의 힘으로 사회에 개혁을 가져왔다는데서 또 하나의 의의를 찾을 수도 있는 일이었다.
미국의 대심원이 개혁을 가져온 분야는 흑인 문제를 둘러싼 사회적 관습에만 그치지 않고 정치·형사소송·종교 문제 등에도 미치고 있다.
사회 개혁에 이와 같이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대심원의 행위를 못 마땅하게 여기는 측에서는 사회 개혁이 정치를 통해서 이루어져야지 법원의 법률해석으로 할 성질의 것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학교와 식당 「호텔」「버스」 기차 공원에서 흑인들이 차별대우를 받는 것을 불법으로 규정한 것도 그 흑백 판례의 하나. 그때까지 의회에서는 남부 출신의 의원들 때문에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못하고 있었다.
대심원은 또 일부 공립 학교에서 학생들에게 의무적으로 주기도문을 외게 하던 것을 위헌으로 판시하여 신앙의 자유를 확인했다. 그리고 형고 소송 과정에도 많은 개선을 가져왔다.
이를테면 l957년 대심원은 정당한 이유 없이 재판을 늦추었거나 기본귄을 침해받은 경우에 이루어진 피의자의 자백은 증거가 되지 않는다고 판시했고 불법적으로 가택수색을 하여 압수한 증거는 확실한 것일지라도 무효라고 했으며 도청 장치는 위헌이라 못박았다.
미국 내의 공산주의 활동에 관해서 내린 결정도 주목할 만한 것이 많다.
주로 공산주의자들의 활동을 제한하는데 많이 적용되어 온 42개주의 치안에 관한 법은 대심원에 의하여 위헌으로 낙인 찍혔다. 그리고 국무성은 어느 특정인이 공산주의 자라해서 해외 여행을 제한할 수 없다는 법적 해석을 대심원으로부터 통고 받았다.
그런데 대심원의 이러한 개혁적 판례에 대하여 불만을 갖는 정치인들은 사법부가 헌법해석을 빙자하여 의회의 법적 지위를 침해하고 있다고 투덜거리고 있는데 이러한 불평은 최근에 사유의 주택가에 있어서의 흑백 차별을 위헌이라 결정할 기세를 보이자 더욱 열을 올리고 있다. 그렇지만 미국처럼 여러 가지 인종과 문화로 구성된 복합 사회에서 입법부와 행정부가 단행하지 못하는 사회 개혁을 법의 힘으로 이루려는 연방 최고 법원의 진보적인 법관들은 법의 해석으로 사회를 이끌어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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