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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신년 문화계에 대한 기대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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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무엇을 바랄 것인가>
아무리 절망적인 상황하에서도 희망과 기대를 버릴 수 없는 것이 인간 실존의 본질이라고 한다. 지난 정초의 본난은 이미 올해 이와 같은 우리의 희망을 본질의 추구라 말한바 있다.
격동하는 사회 속에서 그 변동이 가치 있고 옳은 방향의 것이 되기 위해 우리는 우리의 이와 같은 바람이 원칙의 확립. 질적 발전, 그리고 균형과 질서의 구현 등 세국면에서 함께 이루어져야 할 것임을 강조했던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소망을 건 l968년의 우리 사회에 있어 특히 사상가·학자·문필인·예술가·언론인 등 문화계 인사의 책임은 비길데 없이 크다 할 것이다.
문화 개념에는 원래 정적·동적인 두 측면이 있다. 문화재, 즉 사회적·역사적 유산으로서의 정적 소여성의 측면이 그 하나이다. 이와 아울러 새로운 가치 체계를 세워 여기 따라 그 소여로서의 문화를 확대 재생산하는 동적 과정의 측면이 또한 중요한 것이다. 국내외적으로 미증유의 역겨운 난제 앞에 직면해 있다고 예견되는 새해를 맞이함에 있어 우리는 우리 문화인들에게 과해진 이 동적 문화 창조의 책임이 전례 없이 귀중하다는 것을 지적하고 그들이 합심하여 전기한 본질의 추구에 용감한 향도 구실을 해 줄 것을 바라고자 한다.

<강박관념하의 문화계>
그런데 우리 문화계의 현실을 한마디로 「에비」에 쫓기는 강박관념하의 문화라고 비유한 평론가가 있다. 실제로는 허깨비에 지나지 않는 「정치 권력의 에비」, 「문화 기업가들의 지나친 상업주의의 에비」, 『「소피스티케이트」 해진 대중의 에비』 등, 강박관념에 짓눌려 참다운 문화 창조의 기력을 상실해 버린 상태를 통렬히 비판한 것이다. 이것은 마치 「베이콘」의 (유령)론을 연상케하는 지적이다. 극장·시장·동굴 및 종족의 유령으로 상징되는 독단·편견·선입주관 등이 참된 진리의 빛을 흐리게 하는 논리적 오류의 근원이라고 한다면 문화계 전반에 걸쳐서 전기한 허깨비에 놀란 문화 인물의 무기력한 정신 자세나 권력·금력에 대한 아부 근성 등은 한나라의 문화를 도리어 반문화적·반교양적인 「무드」에 젖게 하는 근원이 되고 있다고 지적할 수 있을 것이다.
이른바 해적판과 어용성이 판을 치고 있는 우리의 문화적 상황은 그러므로 이러한 허깨비 강박관념으로부터의 용감한 탈출을 위해 매서울 이만큼 냉철한 비판 정신의 확립을 통해서만 비로소 그 극복이 가능할 것이다. 물론 집권 당국의 과잉된 정치 의욕이 정치 현상 이전의 모든 분야까지를 압도하고, 흔히 절제를 잃은 권력 행사의 실례를 자주 목도하게 되는 오늘의 상황하에서 이러한 비판 정신의 확립이 그다지 용이치 않으리라는 것은 짐작이 간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용단 없이 참다운 문화 활동이나 전기한바 원리 추구에 대한 국민적 여망에 부응할 수 없다는 것은 우리가 여기서 증언할 필요가 없을 줄 안다.

<미래 아닌 현실의 대결>
이런 견지에서 우리는 우리의 사상가·학자·지도적 언론인들에게 무엇보다도 필요한 것이 다름 아닌 현실 대결에 대한 용기라는 것을 강조코자 한다. 지난해 해외 사조 면에서는 「현재」를 넘어서서 미래를 향해, 새로운 인간 관계의 이해와 보다 전진적인 역사 파악의 문제가 제기되었던 것을 기억한다. 인간 공학, 구조주의, 미래학, 「맥루한」 이론 등은 그 표현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와 지도적 문화인들에게 이처럼 미래로 치닫는 향도 역할보다는 우선 우리가 발 딛고 서있는 현실의 해명과 그 전진적인 극복을 위한 「리더쉽」을 바라고자 한다. 이런 의미에서 소위 권력 주변과 밀착해서 다분히 정책 지향적인 「프로젝트」에는 상당한 열의를 쏟고 있는 우리 문화인들이 참으로 한국적인 현실의 극복을 위한 학구적 노력이나 그 실천 방법의 제시에 있어서는 언제나 격화소양의 우유부단을 일삼고 있음을 몹시 안타깝게 생각한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는 작년이래 인문·사회과학의 전 영역에서 열띤 토론 주제가 될 「근대화 논의」나 민족적 주체성의 문제만이라도 올해에는 그 귀착점이 발견되어 전국민적인 「콘센서스」를 얻는 원천이 되어 주기를 바란다.
문단을 비롯하여 미술·음악·종교·언론계의 일부 인사들은 지난해에 특히 몇 차례의 사상적 시련을 겪은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 이른바 「분지 사건」과 「동백림 공작단 사건」 등이 준 큰 충격은 그 관련자의 대부분이 문화계의 현역 일꾼이라는 점에서 뿐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공산 이리떼들의 갖가지 음흉한 침략 위협을 직접 피부로 느끼고 있는 오늘날의 가혹한 한국적 현실 하에서 자유민들이 참으로 자유로운 문화 활동을 하기 위해 갖추어야 할 자세와 그 한계 문제 등에 대해서 이 사건들은 너무도 많은 교훈을 남겼다고 우리는 보는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이 사건들이 국내 문화인들에게 준 충격이나 공포심이 그들의 현실 대결 정신이나 참다운 문화 활동을 위축시키는 구실이 될 수 없다는 것도 또한 자명한 일이다.
새해에 우리 문화인들은 우리 국민이 확고히 견지해야 할 당위로서의 반공 의식과 참다운 창조적인 문화 활동의 가능성 사이에 흔히 빚어지기 쉬운 갈등을 슬기롭고 용감하게 해소 극복 시켜야 할 당면 과제 앞에 있음을 지적해 두고자 한다.

<비판 정신과 용기를>
이 모든 것은 1968년 우리의 문화계 인사들이 함께 힘을 합하여 투철한 비판 정신을 견지하고 굽힐 줄 모르는 용기를 가지고 소위 한국적 현실에 대결해야할 필요성을 말해주고 있다. 그리고 이와 같은 문화인으로서의 자세 정립의 문제는 참되고 의로운 일을 위해서는 생명을 걸고서라도 오직 원리 추구에만 매진할 수 있는 순교자적 정신의 진작을 그 전제로 하는 것이다. 문화를 그 창조적 측면에서 볼 때 이러한 정신 자세의 확립 없이는 어떠한 문화 활동도 그것은 결국 도리어 반문화적인 것이 될 수밖에 없음을 강조하면서 우리는 새해 우리 문화계의 발전에 큰 기대를 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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