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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사회과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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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사회변동 과정|정책적으로 조절돼야
일반적으로 통용되고 있는 상식적인 견해에 의하면 사회과학이란 그 취급대상에 있어서는 자연과학과 구분되며 그 연구방법에 있어서는 인문학과 구분되는 학문분야를 총칭하는 것으로서 정치학· 경제학· 사회학· 법률학· 인류학 등을 중핵으로 하고 심리학·역사학·지리학 등의 일부를 이에 포함하는 것으로 되어있다.
결국 사회과학자들은 인간관계와 사회현상을 체계적인 이론을 통하여 추구하기 때문에 그 연구방법에 있어서 인문학자들과는 대조된다는 것이며, 또한 그들은 인간사회의 변동에는 일정한 질서가 지배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질서는 이론적으로 구명되고 파악될 수 있다고 하는 신념을 가지고 사회과학적 연구방법을 뒷받침하고 있는 것이다.
이상과 같은 연구방법의 차이로 말미암아 사회과학은 우선 학문의 실제적 효능이라는 면에 있어서 인문학과는 대조되는 큰 차이를 지니고 있다. 소위「학문을 위한 학문」이라는 말이 있듯이 일반적으로 인문학에 있어서는 학문의 실용성이라는 면이 희박하고 오히려 사회적인 효능이 간접적인데 반하여 사회과학에 있어서는 보다 직접적인 강한 효능성이라는 것을 특성으로 삼고있는 것이다.
현대사회에 있어서는 아무도 사회발전이라는 것이 사회의 자율적인 변화에 의해서 이룩될 수 있다고 믿고있는 사람은 없다. 사회 각 분야의 현상과 변동방향은 과학적으로 엄밀히 분석되고 측정되어야만 하며, 나아가서는 적절한 정책적인 노력을 통하여 바람직한 방향으로 유도되어야만 한다는 것이 일반적인 신념으로 되어있는 것이다. 말하자면 현대사회의 각 기능은 인위적으로 조절되어야 한다는 것인데 이러한 노력에 대하여 지적인 토대를 제공해 주는 학문분야가 곧 사회과학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 까닭에 오늘날의 선진국가에 있어서는 사회과학의 사회적인 기능은 참으로 다채롭고 광범위하며 전문적인 지식을 지닌 사회과학자들에 대한 수요는 날로 격증되어 가는 실정을 볼 수 있는 것이다.

<한국적 제약|이해부족과 무관심>
그렇다면 오늘날의 우리 사회에 있어서 사회과학이 차지하고있는 위치는 과연 어떠한 것인가. 우리들의 주위에서도 가령 물가안정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서는 경제학의 지식을 원용해야만 한다든지 인구문제를 조절하기 위하여서는 사회학적인 조사와 연구를 필요로 한다는 동의인식이 없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국가정책의 수립시행이나 사회문제의 해결을 위하여 사회과학적인 조사와 연구성과가 이용된다는 일은 아직은 예외적인 경우에 불과하며 국가사회의 단대한 시책의 대부분은 단편적인 자문이나 즉흥적인 착상 등에 의해서 좌우되고 있는 실정에 있다고 할 것이다.
학문의 발달이란 결코 사회적인 효능이나 수요와는 관련 없이 소수 학자들의 독자적인 노력에 의해서만 이룩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사회적인 인식부족과 몰이해는 학문발달에 치명적인 여러 제약을 초래하게되는 것이며 오늘날 현대사회과학의 총아라고 불리는 사회학이 우리 나라에서 차지하고 있는 위치만을 보더라도 이러한 사정의 일단을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을 것이다.
방대한 학과를 구비하고 있는 그 허다한 대학들 중에서 사회학과를 두고있는 대학이 수삼 개를 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은 우리교육계의 최고지도급에 속한 인사들까지도 학문이 지니는 현대적 가치와 그 방대한 응용분야에 대한 인식을 전연 못 가지고 있다는 것을 입증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 이러한 전반적인 인식부족은 사회과학의 발달을 가로막는 어떠한 제약들을 초래하게 되었는가. 토론 속에서 제시된 여러 제약들을 열거해 본다면 다음과 같이 요약될 수 있겠다.
첫째로 들어야할 가장 중대한 제약조건은 정부 및 지도급 인사들의 사회과학에 대한 이해부족과 이로써 결과되는 무관심 내지는 방치상태라고 하겠다. 오늘날 우리 정부는 국가적 시책의 중점을 공업화와 건설사업에 두고 있기 때문에 과학기술과 경제적 자유를 활용한다는 면에 있어서는 어느 정도의 성의를 나타내고 있다. 그러나 경제란 그것이 아무리 중요한 분야라고 하더라도 필경은 다방면한 사회적 기능의 일부분에 불과한 것이기 때문에 그 밖의 사회시책을 원시적인 상태로 방치하고서는 결코 소기의 목적을 달성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오늘날의 우리사회의 시급하고도 중대한 여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사회과학적인 조사나 연구성과가 활용되고 있는 흔적이란 거의 찾아볼 수 없는 것이다.
국가사회의 근대화란 낡은 사회조직의 근대적인 재편성을 뜻하는 것으로서 이를 위해서는 모든 지적인 힘, 특히 사회과학적 역동의 광범한 동원을 필요로 하는 것이다. 우리 사회의 지도층에 속하는 인사들은 자신의 정치생명의 유지를 위한 고식적인, 혹은 근시안적인 대책에만 급급할 뿐 국가의 먼 장래를 계획하는 원대한 안목을 찾아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우리들은 흔히 이웃나라 일본의 번영 상을 말하지만, 그들이 명치유신 이래로 힘을 기울여온 선진지식의 계획적인 도입개발이나 학문의 진흥을 위하여 기울여 온 막대한 노력 같은 것을 본받으려는 성의는 엿볼 수 없으며, 선진국가의 산업과 기술을 도입하자는 소리는 높으나 그들의 국가적 기획이나 시책면에 반영되고 있는 사회과학의 활발한 활용현황 같은 데에는 전연 외면하고있다는 감을 받게되는 것이다.

<외국연구비의 위력>
다음으로 지적된 것은 이와는 대조되는 대단히 역설적인 문제점의 하나로서 외국으로부터 우리나라학계에 지급되는 연구비의 비중이 엄청나게 크다는 점이었다. 한 마디로 말해서 오늘날 사회과학이나 인문학의 연구비로서 외국의 대학이나 재단이 제공하고 있는 금액의 위력은 거의 절대적인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왜냐하면 근래에 학교에서 진행되어 온 연구다운 연구의 태반은 이러한 기금의 밑받침으로 이룩된 것이며 만일 이것이 두절되는 날이면 우리 학계의 연구 활동은 총 마비상태를 면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외국의 연구비가 미력한 우리 학계에 대한 소중한 활력소의 역할을 담당해왔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비행기 한 두 대 값으로 충당하고도 남음이 있을 정도의 외국의 연구가 이처럼 절대적인 위력을 과시하고 있다는 사실은 우리 학계의 처참한 불모성을 말해주고도 남음이 있다고 할 것이며 적어도 국가 대계를 생각한다는 요로 인사들은 이러한 현실을 뼈저리게 부끄러워할 줄 알아야만 할 것이다.

<연구의 자유허용한계>
또 하나의 문제점은 학술활동에 있어서의 자유라는 문제이었다. 물론 우리가 처해있는 현실은 사상이나 언론활동의 절대적 자유를 요구할 수 있을 만큼 안이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사회과학이란 본래가 상대적인 학문이고, 또한 우리들은 공산세계와 대립하여 싸우고있는 우리의 현실사회를 다루어야만 하는 것이다. 여기에 있어서 만일 학술활동에 대한 자유허용의 한계가 모호하다거나 그 처벌 대상을 기엽말단의 범위에까지 확대하는 경향이 강화된다면 학문활동의 위축은 불가피할 것이며, 심지어는 우리에게 필요 불가결한 연구대상까지도 포기해야만 한다는 우려할만한 결과가 초래될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토론자들의 일치된 견해로는 사회과학의 자유로운 활동 한계점에 대한 보다 합리적이고도 보다 구체적인 규정이 명시됨으로써만 학문활동의 위축을 방지할 수 있겠다는 것이었다.

<도서와 자료의 빈곤>
오늘날 이 나라의 학계에 몸을 두고 있는 사람으로서 도서와 자료의 극심한 빈곤상을 개탄 안할 사람은 없겠으나 아마도 이러한 제약은 한국의 사회과학의 수준 향상을 저해하는 치명적인 조건이 아닐 수 없다.
서울대학교도서관과 같은 국가를 대표하는 도서관에 있어서 조차도 신간학술서적은 물론 심지어는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학술잡지들조차 제대로 구비할 수 없는 실태라면 기타의 군소 도서관의 경우란 언급할 필요조차 없을 것이며 이러한 한심한 실정은 국가적인 수치라기 보다도 대한민국의 치부를 드러내 보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결국 책 없는 학자란 무기 없는 군대와 다름없는 것이니 이러한 사람들로 구성된 학계의 무력 침체 상이란 오히려 당연한 귀결일수 밖에 없다.

<한국적인 분포|아직은 초보적 수준>
이상과 같은 이중 삼중의 장애 속에 갇혀 있는 우리 나라의 사회과학의 분포도는 불가피하게 한국적인 특이한 양상을 드러내 보이고 있다. 물론 예외적으로는 시세를 탄 일부 학문분야에 어느 정도의 활기가 반영되고 있는 경우도 없다고는 말할 수 없다. 그러나 국제학계의 비상한 관심이 집중되어 있는 중요한 학문분야들이 사회의 몰이해로 말미암아 전연 방치되고있는 경우를 볼 수 있는가 하면 우리의 실정으로서 시급한 개발이 요청되는 학문분야가 거의 공백상태를 계속해 내려오는 경우 같은 것도 허다히 지적될 수 있는 것이다.
가령 사회학의 경우를 보더라도 한국의 사회학은 아직도 일반사회학이라는 초보적인 수준을 멀리 탈피하지 못한 채 지금 겨우 전문화 과정의 첫머리에 들어서고 있다는 것이 이 교수의 소견이었다. 이것은 앞서 언급한 바와도 같이 현대사회학이 지니는 엄청난 응용분야와 학문적인 효능성에 대한 전반적인 인식부족에서 오는 현상이라고 하겠다. 그런가하면 정치학의 분야에 있어서는 국제관계나 정치이론 및 비교정치론 등의 분야에는 어느 정도의 연구인원이 분포되고 있으나 우리에게 있어서 가장 절실하고 시급하다고 할 수 있는 한국에 관한 연구, 즉 한국 정부론이나 한국정치사상등의 분야는 거의 공백상태나 다름없다는 것이 손 교수의 견해이었다.
한편 법률학에 있어서도 5·16이후에 갑자기 시세를 탄 행정학(이 분야의 소속문제에 관해서는 정치학과 법률학의 양 분야 사이에 논란이 계속되고있다고 한다)과 같은 분야에는 상당한 활기가 나타나고 있으나 공법이나 국제법과 같은 기본적인 분야는 오히려 저조를 보이고있고 시급한 개척이 요망되는 사회법의 분야는 의연히 망각상태에 처해있다는 것이다. 특히 여기에 있어서도 동양 및 한국의 법 제사나 법사상에 대한 연구는 전연 방치되다시피 되어 있어서 이 방면의 전문학자들 조차 거의 찾아볼 수 없는 형편이라는 것이 김교수의 소견이었다.
이러한 가운데서도 아마도 경제학분야만은 일반적인 침체 상을 모면하고있는 예외적인 분야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정부의 배려와 사회적인 수요가 격증하고 있는 이 분야에 활기가 집중된다는 것은 오히려 당연한 현상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 있어서도 사회적으로 요청되고 있는 경제학의 지식이란 대부분의 경우 단편적인 자문이나 심의정도의 것에 불과하다는 것이며 본격적인 조사연구를 토대로 한 지식성과가 활용될 태세는 아직도 갖추어지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경제학의 전통적인 기간분야에는 상당수의 연구인원도 분포되어있으나 계량경제학을 중심으로 한 새로운 학문분야의 수준이 미급하여 실제적 연구는 대단히 빈약한 실정에 놓여있다는 것이었다. 더우기 농업국가인 우리 나라에 있어서 농업경제학의 개척이 부진하다는 것은 한심스러운 현상이라고 김준보 교수는 지적하고있다.
이상과 같은 현황소개를 일관하여 토론자들이 지적하고 있는 공통점은 아직도 우리 사회에는 우리의 것을 우리의 힘으로 연구하겠다는 사의와 대책이 부족하다는 것이었으며 오히려 한국에 대한 연구가 국외의 관심과 연구비에 의하여 피동적으로 이끌려 나가고 있다는 현상은 시급히 타파되어야만 하겠다는 점이었다.

<사회과학의 장래|기대되는 잠재 동원력>
그러면 이상과 같은 암담한 현황 속에서 우리들은 어떠한 앞날의 희망을 찾아볼 수 있을 것인가. 구태여 한 두 가지의 자위점을 찾아볼 수 있다면 첫째로 해방이후로 수많은 우수한 사회학도들이 해외로 유학하여 지금은 선진국의 유능한 학자로서 활약하고있다는 점이다. 일예를 정치학계에서 들어본다면 지금 미국에만 약2백 명에 가까운 한국출신의 정치학도들이 대학이나 연구기관에서 학문활동에 종사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물론 이러한 많은 인사들이 가까운 장래에 귀국하여 우리학계를 위하여 공헌하리라는 기대는 매우 희박하다.
그러나 이와 같은 잠재적 동원력은 우리 학계의 큰 강점의 하나임에는 틀림없는 것이며 앞으로의 직접 혹은 간접적인 많은 기여가 기대된다고 할 것이다. 여기에 또 한가지의 자위 점을 들어본다면 근래에 우리 나라를 방문한 외국학자들의 우리 학계에 대한 인상이 한결 같이 밝고 희망적이었다는 점이다.
물론 이러한 평가란 일반 후진국가들을 대상으로 한 상대적인 것이기는 하겠으나 그들은 입을 모아 한국의 사회과학자들이 젊고 솔직하고 용감하고 또한 예상했던바 보다도 그 지적수준이 높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만일 제3자들의 이러한 허가가 문자그대로의 공치레만이 아니라고 한다면 이상과 같은 젊고 의욕적인 학자들의 발랄한 자질과 활력 속에서 내일을 기대해 본다는 일도 전연 헛된 일은 아닐 것이다.

<학계의 자체반성|인접과학에의 인식>
그러나 무엇보다도 학계자체의 내부에 강한 반성과 혁신의 기운이 마련되어야만 하겠다는 점에 대해서는 이론이 있을 수 없다. 한국의 사회과학자들에게 요청되는 반성 점으로 토론자들은 다음과 같은 점들을 제시하였다.
첫째로 극복되어야할 통폐의 하나는 지나친 파벌의식과 독점의식이라고 할 것이다. 이것은 우리 학계가 청산해야만할 전근대적 속성으로서 자기가 하는 분야는 자기만이 독점해야하며 타인의 침범을 불허한다는 배타적인 태도인 것이다.
이러한 의식은 동일분야의 협동연구의 길을 봉쇄하는 동시에 학자들 사이의 대립반목을 조장하며, 나아가서는 학문적인 대립이라기보다는 순전히 권위나 지위·이익관계를 두고 얽히는 추잡한 파벌 싸움을 연출하게 되는 것이다. 이리하여 동일 혹은 유사분야의 학자들 사이에는 서로 밀접한 합리적인 협력관계가 이룩되는 것이 아니라 인간적인 적대관계가 조성되어 가기 마련인 것이다.
다음으로는 일반적으로 인접과학에 대한 인식이 빈약하여 안목이 좁고 학문과 학문사이의 연관이나 협조가 미약하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우선 공부나 민간재단의 주도로 사회과학의 공동연구를 위한 종합적인 기구가 마련되어야만 하겠으나 학자들 자신의 태도에도 이러한 단점을 극복해 나갈 노력이 시급히 반영되어야만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학계의 후진성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학문적인 태도가 보다 활발하여야만 하겠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우리 나라의 학계에는 아직도 정상적인 의미의 학문 평가라는 것이 이룩되지 못하고 있다. 그런 까닭에 업적의 질과 양이 학자의 지위를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비 학문적인 요인에 의하여 그러한 문제가 좌우되는 경향이 답습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후진적인 풍토를 청산한다는 문제는 우리 학계에 부과되고 있는 또 하나의 큰 숙제가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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