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태양의 시작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1면

요즘은 동창을 보고 아침시간을 가늠할 수 없다. 햇살은 7시가 지나도 창을 두드리지 않는다. 동짓날엔 느지막이 7시43분에야 태양은 회색 빛의 눈을 비빈다. 그러고도 [안단테·칸타빌레](느리광이 걸음)로 늑장을 부린다. 정오를 넘기면 벌써 태양은 짐을 꾸리기 시작한다. 5시17분이면 빛을 거두고 날은 어둡다. 동지께처럼 볕이 인색할 때는 없다.
출근시간이 훨씬 지났다. 그리고 길거리에는 분주히 달리는 [택시]에 손짓을 하는 [샐러리·맨]들이 있다. 모두 [동지지각꾼]들. 1년중 늦잠이 제일 달콤한 시기이다. [단골지각생]의 경우는 이 무렵만은 출근시간을 좀 늦추었으면 하는 소망도 없지 않을 것이다. 하긴 출근시간을 좀 넘겨 허둥지둥 뛰는 맛도 괜찮다. 귀가 알알하던 추위도 잊고 이마에서는 때없이 김이 무럭무럭 나는 것이다. 엄동에 땀을 뻘뻘 흘리며 출근하는 기분은 과히 불쾌하지 않다. 아니 쾌감 축에 든다.
그러나 그렇게 성급히 서두를 것도 없다. 이맘때면 [보너스]라도 주는 직장이라면 한사코 뛰기라도 하겠지만. [보너스]커녕 궁색만 떨며, 사무실의 난방마저 으스스한 형편에 뛰는 맛은 없다. 과연 우리 주변엔 뜀박질까지 하며 출근할만한 직장이 몇 군데나 될까.
기후와 국민소득의 관계는 좀 기묘한 것 같다. 견디기 좋고 식량이 풍성한 기후 권에 사는 사람들은 별로 유복하질 못하다. 우리 나라만 해도 좋은 기후대에 속한다. 겨울도 여름도 지겹도록 고통스럽지는 않다. 봄·가을은 견줄 데 없이 낙원의 기후이다.
가령 국민소득이 높은 [스웨덴](2천불)의 경우만 보아도 지겨운 [백야]와 지겨운 [장야]가 계속되는 것이다. 12월 초순이면 이 나라에는 도무지 낮이 없다. 1월10일께까지는 태양을 볼 수 없다. 밤과 어둠과 추위의 연속이다. 우리 나라로 치면 [황금의 계절]인 5월부터는 반대로 밤이 없다. 53일간을 낮만 계속된다.
[백야]속에 살고 있는 것이다. 방마다 [블라인드·셔터]로 [인공밤]을 만들어 그들은 잠을 청한다.
이제부터 한반도는 낮이 길어지기 시작한다. 옛날은 이때를 [설날]로 지냈다. 태양의 새로운 [시작]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땀을 흘리며 출근을 해야하는 그런 사회를 살고 싶다. 바로 우리의 노력에 달려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