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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유·김회담|김종필씨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1면

6·8총선의 부정시비로 여·야 사이에「대화의 통로」마저 막힌 채 정국이 얼어붙어 있던 지난 10월 28일―.
이 날밤 서울시내 혜화동 신민당 정책위의장 정해영씨댁 응접실에선 극비리에「4개월만의 첫대화」가 조심스럽게 오가고 있었다. 유진오 신민당당수와 김종필 공화당의장 두사람만이 마주앉아 나누는 대화였다. 이 여·야 수뇌의 비밀면담은 닷새 뒤에 필동유당수댁에서 열려 표면화한 이른바「유진오·김종필회담」의 사실상 전반부였다. 『그날, 10월 28일 정해영의원댁에서 유 당수를 만나 뵌 것은 서로 비밀로 덮어두기로 했었지… .그래서 그 동안 몇몇 방송국 「인터뷰」때도 정의원댁에서의 유 당수 면담을 부인했었는데 기정사실로 알려졌고 이제 한해를 보내는 마당이니까 사실 대고 털어놓지….』 김종필 당의장은 유 당수와 만나는 등 정국수습에 앞장서게된경위를 설명하면서 말머리를꺼냈다.
『신민당이 6·8국회의원선거의 전면부정을 내세워 국회등원을 거부하고 원외강경투쟁을 벌이기 시작했을 때 나는 모든 것을 시간이 해결할 것이라고 믿었지요. 그래서 경화한 분위기를 서서히 풀어가려면 냉각기가 필요하다고 보고 두달 반동안 목「디스크」를 치료하면서 수습의「타이밍」을 잡는 방안만 생각했습니다. 그러다가 10월로 들어서면서 대호의 분위기가 조성되고「타이밍」이 가까워 오고 있다고 판단했던 겁니다.』그러던중 10월초순, 청와대 들렀다가 박정희 대통령으로부터 정국정상화를 위해 나서보라는지시를 받았다는 것.
『그때 박 대통령께서는 여당이 가만히만 있을게아니라 능동적으로 야당을 만나 「협상」를 거치는 민주정치의 표본을 뵈도록 하라고 지시하셨습니다. 박 대통령의 생각이 그 당시는 강경한 것처럼 알려졌지만 진의는 야당과의 호흡을 누구보다도 원하셨지요. 그래서 야당과의 접촉을 본격적으로 모색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10월 10일께부터 공화당의 대야막후접촉은 한층 활발해졌다. 다섯 여섯 갈래의 접촉이 진행됐는데 그 가운데서 이후락 청와대 비서실장과 신민당 정해영씨의 접촉이 가장 깊이 있게 들어갔다. 울산이 동향이어서 전부터 친분이 있던 이·정 양씨의 접촉은 10월 20일께부터「유·김 회담」의 가능성을 타진, 25일 완전합의에 이르렀다는 것.
그러나 김 당의장은 이런 경위에 대해서는 『먼 뒷날 얘기하자』면서 입을 열지 않았다. 『몇 사람이 오랫동안 애 쓴 보람으로 28일밤 8시반부터 10시까지 1시간반동안 유 당수와 단둘이 만났지요. 인사를 나눈 뒤 약 15분 동안 잡담을 했지…7월6일 필동 유 당수댁에서 새벽 3시까지 술잔을 기울이던 때의 일이며, 그분의 해학스러운 얘기로 부드러운 분위기가 되었지요. 자연스럽게 시국 얘기를 꺼내 유 당수가 먼저 야당입장을 설명했습니다.』
김 당의장은 유 당수의 얘기를 들은 뒤 공화당의 입장과 고충을 설명했다는 것. 그러자 2∼3분 동안 침묵이 흐르고 어색한 분위기가 되었다. 의자에 깊숙이 앉아 담배를 피우던 유·김 양씨는 거의 동시에 『결론부터 얘기하자』고 제의, 「거꾸로의 대화」로 말을 이었으며 이런 대화방법이 이 회담을 성공적으로 이끄는데 주효했다는 것이다.
『우선 그 자리에서 결말을 내 자는데 의견을 모았습니다. 그리고 어떻게 해서든지 신민당이 국회에 들어오는 길을 트자는 데 합의했지요. 유 당수께선 다음단계로 부정재발 방지등 등원의 조건을 내세웠습니다. 이날 회담에선 그내용은 얘기하지 않고 공식적으로 다시 만나 얘기하기로 하고 헤어졌습니다.』
전남한해시찰을 앞당겨 끝내고 상경한 김 당의장은 박대통령의 양해를 받아 10월 30일 유 당수에게 공식면담을 요청하는 서한을 보내고 11월 2일 아침9시 필동 유 당수댁을 방문했다.
『이날 회담에서 신민당의 등원 조건들이 바탕이된 사실상의 협상의제가 마련되었습니다. 정당법·선거관계법의 개정과 선거부정조사 특조위 구성등 전권협상의 의제가 상당히 자세하게 얘기되었지요. 신민당이 「유·김 회담」대신에 전권대표회담으로 하자고 제의하여 오히려 더 잘됐다고 생각했습니다.』
김 당의장은 사태수습을 당「레벨」에서 다루는 입장만을 관철시키고 모든 협상절차와 내용은 거의 신민당측안을 바탕으로 했다 고한다. 이번 전권협상에선 「야당의 고층」을 무엇보다 존중했기 때문에 타결되었다고 진단하는 김 당의장은 『타결과 조화의 정치 풍토가 아직도 아쉽다』면서 당의장 실을 나서 어수선한 연말국회로 향했다. <윤기병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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