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임을 위한 행진곡'이면 충분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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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5·18 기념식에서 불려온 민중가요 ‘임을 위한 행진곡’을 대체할 새로운 기념곡을 만들겠다는 국가보훈처와 이를 철회하라는 광주 지역 인사들의 갈등이 심상치 않다. 강운태 광주시장과 이 지역 출신 국회의원, 관련 단체 및 지역 시민단체 대표들은 이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올해 기념행사에 불참하고 묘지 입구에서 침묵시위를 벌이겠다고 밝혔다. 박승춘 국가보훈처장이 “5·18은 광주 시민만의 행사가 아니고 정부의 기념행사”라며 “정부의 모든 민주화 운동 기념행사에는 공식기념 노래가 있다. 여기에는 이견이 없는데 ‘임을 위한 행진곡’은 많은 의견이 있다”고 말한 데 거세게 반발하고 있는 것이다.

 ‘임을 위한 행진곡’은 시민들의 뜻으로 그 역사성과 상징성을 다져왔다. 1983년부터 5·18 기념식 때마다 불려 왔다. 2004년 기념식 때는 노무현 당시 대통령이 참석해 이 노래를 불렀으며 당시 야당대표였던 박근혜 대통령도 행사에 참석했다. 특히 80년대 민주화 과정에서 수많은 국민이 애창하면서 널리 퍼졌으니 오히려 5·18을 넘어 한국 민주화를 상징하는 뜻 깊은 문화유산이라고 할 수 있다. 민주화의 한 시대를 풍미했고 그 시기를 상징하니 역사성과 상징성에서 이만한 노래가 없다. 이미 한국사의 일부분으로 자리 잡았다.

 게다가 이 노래는 탄생부터 5·18과 관련이 깊다. 5·18 당시 숨진 고 윤상원씨와 앞서 노동자 야학운동을 하다 사고로 목숨을 잃은 고 박기순씨의 82년 영혼결혼식 당시 공연됐던 노래극에 삽입된 곡이다. 5·18 관련 문화 콘텐트 중 국민 대다수에게 이만큼 익숙한 것도 드물다. 운동권에서 널리 불리다 보니 이념적으로 오해를 받을 수도 있겠지만 친북적인 요소는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면 아픈 역사는 그대로 남기는 것이 옳다.

 이런 노래가 있는 마당에 굳이 새로운 기념곡을 만드는 게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만들어 봤자 시민들이 이를 불러주지 않는다면 소용이 없다. 괜한 논란과 갈등만 부를 것이 아니라 그 역사성을 인정하는 것이 순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