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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 67년…흘러간 [뉴스]의 주인공들 | C46기 추락, 청구동참사의 유족 | 김재순양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엄마가 계셨더면 혼자서 입학시험 치러 가지는 않았을 거예요….} 추위로 터진 두손으로 얼굴을 가린 김재순(13·은평국민학교 졸업예정)양의 눈에 이슬이 맺혔다. 합격자 발표를 보곤 낯선 중학교의 뒷모퉁이에 숨어서 막 울었다고 했다.
그러나 홀로 중학교에 합격했다는 대견스러움에 벅차 있는 소녀는 곧 맑은 눈망울을 되찾을 수 있었다. 서울 응암동 [아파트]C동에는 자난 4월8일 날벼락 바람에 64명이 죽은 청구동 C46 공군비행기 추락사고의 유족19가구 21명이 살고있다.
쏟아지는 빗줄기를 맞으며 엄마(권점례·당시40세)를 찾아 울부짖던 재순 양도 213호실에서 신경통으로 몸져 누워있는 아버지 김종휘(51)씨와 동생 재일(10·은평국민교 4년)양과 재현(7·은평국민교 1년)양등 네식구와 함께 조용히 살고있다.
{그날은 장릉으로 소풍을 가게 되어 아침에 엄마가 싸 준 점심이랑 과자가 든 [륙색]을 메고 학교에 갔으나 비가 쏟아져 공부하고 돌아와 보니 엄마도 집도 그만….} 기억조차 괴로운 듯 말끝을 흐렸다. 지난 중학교 입시에는 여러 가지 사정을 고려, 성만 여자 전수학교에 응시, 3대1의 경쟁에서 합격했으나 15일까지 납부할 입학금 8천5백60원도 걱정이라고.
두동생을 거느리는 마음씨나 시험친날 동생을 데리고 엄마위패가 모셔있는 백년사에 가서 한나절을 보낸 일등 정성이 갸륵해 {눈물이 날 지경}이라는 아버지의 말이다.
그러나 김양은 결코 외롭지만은 않았다. 김양의 당시의 사진과 기사가 국내는 물론 전파를 타고 멀리 미국으로까지 날아가 미국의 각 신문에 크게 보도됐다.
미국의 [매사추세츠]주 [레이세스터]에 사는 [루이스·네이플]씨 부처가 지난 6월초부터 김양을 양녀로 삼겠다고 여러 차례 제의해 오고 있다는 것. 아들 여덟에 딸 넷을 거느린 다복한 이 부처는 가정환경을 일일이 소개하고 {전 가족이 다투어 김양을 사랑하게 되었으니 보고싶어 죽겠다}했다.
지난 9월과 10월에는 위로의 편지와 함께 그림책, 인형, 털옷가지, [원피스] [크레용]등 갖가지 학용품도 함께 부쳐 보냈다.
김씨에게는 {김양을 미국으로 보내 주세요. 티없이 곧게 그리고 훌륭하게 기릅시다}고 호소하는 편지를 보내고 김양도 그간 10여 차례나 고맙다는 답장을 보냈단다. 아버지 김씨도 은평국민학교장 선생님의 권고도 있고해서 몇 차례나 미국대사관에 다녀왔다. {저 어린것들이 서로 떨어져 그리는 모습을 생각하면 눈물이 나지만 장래를 위해서는 승낙 않을 수 있겠느냐?}는 대답이었다.
김양은 아무래도 어린 두 동생의 곁을 떠나기는 참을 수 없는 듯 두동생의 얼굴을 번갈아 보며 그 맑디맑은 얼굴을 흐렸다. {무척 쾌활한 애였는데 요즘은 통 말이 없다}는 아버지의 말.
{의사나 간호원이 되어 불쌍함 사람들과 병든 사람들을 돕는 일을 하고 싶다}고 또렷또렷하게 말한 [열세살짜리 주부] 김양의 정신은 아무래도 연탄아궁이 쪽으로 쏠리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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