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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취재일기

나라 밖에서만 쏟아지는 소신 발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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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0면

이태경
경제부문 기자

인도 뉴델리발 뉴스에 국내 금융권이 술렁이고 있다. 3일(현지시간)부터 사흘간 이곳에서 열린 아시아개발은행(ADB) 연차 총회에 참석한 금융권 수장들이 잇따라 소신발언을 내놓고 있어서다.

 시작은 최근 ‘금리 동결 마이웨이’ 논란에 휩싸인 김중수 한국은행 총재였다. 그는 경기부양에서의 한은 역할을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올해 (한은이) ‘정책 조합’을 강하게 언급한 것은 정부에 ‘이젠 네가 나설 차례(Now it’s your turn)’라고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경기부양은 정부의 몫이고, 한은이 금리를 손댈 이유는 없다’는 의미로 해석되는 발언이다. 김 총재의 발언에 놀란 투자자들이 국채를 매도하는 바람에 6일 국채 3년물 금리가 0.09%포인트나 급등했다.

 박병원 은행연합회장도 한몫했다. 박 회장은 “우리나라 금융은 아직 낙후돼 있어 창조가 아니라 캐치업(Catch up·따라잡기)이 먼저”라고 했다. 정부·금융권에서 불고 있는 ‘창조금융’ 바람에 쓴소리를 던진 것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임영록 KB금융 사장은 “KB금융 사외이사가 강력하지 않다”고 말했다. KB금융을 ‘사외이사들의 놀이터’로 보는 시중의 인식이 틀렸다는 얘기다.

 이들의 발언엔 공통점이 있다. 정부를 향한 쓴소리다. 나름대로 일리도 있다. 한은더러 대놓고 금리를 내리라고 압박하는 정부, 개념도 불확실한 ‘창조금융 코드 맞추기’ 경쟁을 하는 금융권을 비판적으로 바라볼 수 있다.

 하지만 발언의 옳고 그름을 떠나 때와 장소가 적절했는지 의문이 든다. 세 사람은 모두 ‘뉴스 메이커’다. 자신의 생각을 원하는 때 원하는 방식으로 알릴 수 있는 힘과 수단을 갖고 있다. 정부의 ‘일방통행’을 비판하려 했다면 국내에서도 얼마든지 기회가 있었다는 얘기다. 당장 “국내에선 내내 침묵하다가 위험 부담이 작은 해외에서 발언을 하는 건 당당하지 못하다”(조남희 금융소비자원 대표)는 지적이 나온다. 나라 밖에서만 쏟아져 나오는 소신이 씁쓸하기만 하다.

이태경 경제부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