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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시험제도 변천사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시험지옥을 부채질이나 하듯 조령모개식으로 바꿔오던 입시 변천사는 다음과 같다.
▲학교관리 입시 시대(45∼50년) = 해방과 함께 일본식제도를 그대로 답습. 국민교의 내신서와 중학입시성궤을 반반씩 참작. 학교장이 재량껏 합격을 결정지었다.
▲국가고시 제도(51∼53년) 6·25동란직후 피난시에 실시했다.
▲무시험·유 시험제의 병행(54∼57년) = 동란후 시험만으로 아동의 실력 측정이 어렵고 신체 장애를 가져올 우려가 있다고 무시험제를 권장. 그러나 출신교 내신서 작성에 따른 부작용이 컸다.
▲연합출제(62∼63년) 완전무시험, 완전유시험, 일부 무시험등의 병행으로 시험을 치르는 학교만 공동으로 출제 관리했다.
▲국가 고시제(63∼65년) = 국어·산수만을 시·도 교육감 책임아래 공동출제 관리했다. 「무즙」파동은 아직 기억에 생생하다.
▲단독 출제(66년) = 「무즙」파동에서 자극을 받아 학교마다 단독 출제토록 했다.
▲문제 은행식(67∼68) = 출제는 교육위에서 하되 학교마다 문제선정과 결정권을 인정, 교장의 재량도 주었다. 지방에선 공동출제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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