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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진짜 내 직장 … 일만 잘하면 되니 맘 편해요”

온라인 중앙일보

입력

계약직에서 올해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SK그룹 계열사 서비스에이스의 명효진(왼쪽)·조은빛씨가 ?1등 회사, 1등 사원?이 되겠다며 활짝 웃고 있다. 최정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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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1만1000명. 통계청이 발표한 지난해 말 우리나라 비정규직 근로자의 숫자다. 전체 임금근로자 셋 중 한 명꼴이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급증해 2008년 금융위기 이후 고착된 비율이다. 평균 임금도 정규직의 70% 수준에 머물고, 국민연금·건강보험 가입률도 낮다. 비슷한 일을 하면서도 급여와 복지, 안정성에서 차별을 받는 비정규직의 존재는 사회통합을 가로막는 요소이기도 하다. 최근 주요 대기업들이 비정규직을 앞다퉈 정규직으로 전환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공공 분야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추진하는 영향이 크지만 기업 입장에서도 비정규직 유지가 꼭 이익이 아니라는 인식이 퍼지고 있어서다. SK그룹이 지난달 30일 비정규직의 절반 이상을 연내 정규직으로 전환하겠다고 밝혔다. 4대 그룹으로는 처음이다. 정규직으로 새 출발하게 되는 이들의 입장을 들어봤다.

이직률 높으면 회사도 업무 교육 부담
“이제 내 직장이라는 확신이 생겼어요. 재계약에 대한 부담도 없어졌고요.” “친구들 한테 SK그룹에서 일한다고 당당히 말할 수 있게 됐어요.”

 목소리가 밝았다. 조은빛(27)·명효진(28)씨는 SK텔레콤의 자회사인 서비스에이스에서 일하는 상담사들이다. 유·무선을 합쳐 3000만 명 가까운 SK텔레콤 고객들의 각종 문의전화를 받고 처리하는 게 이들의 업무다. 그간 2년 계약의 비정규직으로 근무하던 이들은 SK그룹의 방침에 따라 올해 안에 모두 정규직으로 전환된다. 2일 서울 구로2동 서비스에이스 구로2고객센터에서 만난 이들은 회사에 대한 소속감이 높아졌다고 입을 모았다. 또 자신들의 일과 삶에 대해 보다 긴 시각에서 볼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이들의 업무는 고객 상담전화를 받는 일. 겉보기와 달리 결코 단순 업무가 아니다. 조씨는 “통신사들의 서비스 경쟁이 치열하잖아요. 기술도 계속해 바뀌고. 이런 내용들을 숙지하지 않으면 제대로 설명드릴 수 없어요”라고 말했다.

 명씨는 “과다한 요금이 나오는 등 불만이 있는 고객이 많거든요. 정확하고 빠르게 설명하면서도 불쾌감이 없도록 해야 하는데 말처럼 쉽지 않아요”라고 했다.

 SK텔레콤은 서비스에이스와 서비스탑이라는 2개의 고객 서비스 자회사 산하에 15개 고객센터를 운영한다. 센터 문의전화는 하루 수십만 건. 상담사 한 사람당 평균 120건 이상을 처리해야 한다. 점심시간 무렵에 문의전화가 폭주하기 때문에 상담사들은 4개 조로 나눠 오전 11시부터 오후 3시까지 점심식사를 해야 할 정도로 바쁘다.

 명씨는 “과다한 요금이 나왔다는 분이 많지만 원인은 스마트폰을 끄지 않거나 자녀가 부가 서비스를 이용하는 등 사용자 귀책사유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이걸 부드럽게 설득하는 게 우리 일의 핵심”이라고 말했다. 조씨는 “가끔 식사했느냐고 안부를 묻거나 상담이 끝난 뒤 고맙다는 말씀을 해 주실 때 큰 보람을 느낀다”고 했다.

 이 회사 상담사가 모두 비정규직은 아니다. 기존에도 2년 계약기간이 끝나면 내부 평가에 따라 정규직으로 상담사 일을 계속해 왔다. 상담실적과 근무시간에 연동되는 급여체계여서 정규·비정규직 차이는 거의 없었다. 그럼에도 회사 역시 정규직화가 필요했다.

 고객2센터 김용기 그룹장은 “상담사는 기술과 서비스에 대한 이해는 물론 감정노동의 성격도 강하기 때문에 초보자와 경험 많은 상담사의 생산성 차이가 상당히 크다”고 말했다. 적어도 1년은 해야 한 사람 몫을 한다. 문제는 비정규직인 계약직 상담사들은 이직률이 너무 높다는 점이다. 입사 1년 내에 그만두는 경우가 많다 보니 새로 사람을 뽑고 교육을 시켜야 하는 회사도 부담이 컸다.

 정규직화가 발표되면서 현장 상담사들의 반응은 확연히 달라졌다. 명씨는 “친구들에게 직업을 얘기할 때 ‘고객상담을 한다’며 얼버무렸던 기억이 많다. 이젠 자신 있게 SK그룹에서 일한다고 말할 수 있게 됐다”고 했다. 심리적 안정감이 커진 것도 변화다.

 조씨는 “계약직 2년차가 되면 재계약을 앞두고 평가가 많아지기 때문에 심리적인 부담이 무척 컸다. 이제는 내 일만 잘해 내면 된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편하다. 선배 계약직 중 어린아이를 둔 주부상담사들이 특히 마음이 편해졌다고 한다”고 말했다.

 책임감이 더 생기고, 앞으로 회사 생활과 인생을 어떻게 꾸려나갈지에 대해 생각이 많아진 것도 변화다. 조씨는 “계약직 신분일 때는 회사에서 현재 업무 외에 앞으로 뭘 해야겠다는 생각을 별로 해 본 적이 없다”며 “사람 상대를 좋아하는 내 성격에 맞춰 장기적으로 어떤 일을 할지 고민하게 됐다”고 말했다.
 
회사는 경력관리·자기계발 뒷받침
회사 쪽도 정규직화하는 사원들의 경력 개발을 위한 후속 대책을 마련 중이다. 김 그룹장은 “기존에도 상담사 경력이 쌓이면 다른 상담사들을 관리하는 매니저 역할을 하거나 상담·고객만족 분야의 교육사업 등 여러 경로가 있었다. 이런 부분에 대해 체계적으로 알려 주고 자기계발을 할 수 있게 돕고 싶다”고 말했다. SK그룹 홍보실 조병구 과장은 “그룹 인사팀 차원에서 기존 계약직 사원들이 선택할 수 있는 다양한 경력 개발 과정을 연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SK그룹은 현재 그룹사 전 직원의 12%인 9700여 명의 비정규직(계약직) 중 올해 5800명을 정규직으로 전환키로 했다. 이 중 4400명은 SK텔레콤과 SK플래닛의 고객관리 자회사 소속의 상담사다. 조 과장은 “이들의 정규직 전환에 따라 추가되는 비용은 연간 200억원 정도다. 하지만 그 이상의 효과가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다른 대기업들도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시키고 있다. 한화그룹은 계열 백화점·리조트 등에 근무하는 전체 5000여 명의 비정규직 중 2043명을 정규직으로 전환하겠다고 이미 밝혔다. 파격적인 조치다. 이미 지난 3월 1900여 명이 정규직이 됐다. 비정규직이 많은 유통업계가 뒤를 이었다. 신세계그룹은 이마트에서 4월 9100명, 5월 1657명 등 총 1만757명을 이달 초까지 정규직으로 바꿨다. 신세계 홍보팀 장대규 과장은 “4월 정규직으로 전환된 9100명의 경우 월 이직률이 1.7% 수준으로 예전의 월평균 15%보다 크게 줄었다”고 말했다. 롯데마트도 3월 말까지 1600명의 도급직원을 정규직으로 전환했다.

 하지만 대기업들이 주도하는 정규직 전환이 비정규직 문제를 모두 해결하기는 어렵다는 지적도 나온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전체 비정규직 591만 명 중 대기업(직원 300인 이상) 소속은 5.2%에 불과하다. 전체 비정규직의 70%는 직원 30명 미만의 영세한 소기업에서 일한다. 이들 영세기업 대부분이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할 여력이 많지 않다. 대기업과 중소·영세기업의 양극화가 더 심해질 것이라는 우려가 그래서 나온다.

이승녕 기자 franci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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