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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군에 치우친 군사전략 수정 해군과 공군 강화해 비중 높여야”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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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1호 14면

유삼남 해양대 석좌교수. 1941년 경남 남해생. 해군사관학교(19기) 졸업. 해군 정보참모부장·작전사령관을 거쳐 97년 제21대 해군참모총장에 임명돼 2년간 재직했다. 예편 뒤 2000년 16대 총선에서 새천년민주당 비례대표(19번)로 당선됐고 2001년엔 제 8대 해양수산부 장관에 임명됐다. 2003년부터 2012년까지 사단법인 한국해양연맹 총재를 지냈다.

채명신 장군이 빈틈없는 안보를 전제로 '평화적인 북한 관리'를 주문함에 따라 군사·해양 전문가인 유삼남(72ㆍ사진) 한국해양대 석좌교수를 만나 그 구체적인 방법론을 들어봤다. 북한과의 충돌 우려가 가장 높은 지점이 서해 북방한계선(NLL) 등 해양 부문이란 판단에서다.

군사·해양 전문가 유삼남 한국해양대 석좌교수

유 교수는 40년간 해군에 몸담은 끝에 김영삼 정부에서 해군참모총장, 김대중 정부에서 해양수산부 장관을 각각 역임했고 이후 9년간 한국해양연맹 총재를 지냈다. 유 교수는 “육군에 치우친 우리 군사전략에서 공군과 해군의 비중을 높여야 한다”며 군 최고회의기구인 안보전략회의에 국방부 장관, 합참의장과 함께 육해공군 참모총장이 모두 참여토록 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또 한반도 관리를 위해 정부는 대북특사 제도를 신설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중국은 북한의 도발을 막는 데 주력하고 미국은 일본의 우경화를 막는 데 힘써야 한다는 제언도 곁들었다. 박근혜정부 들어 눈에 띄는 군 출신 인사들의 고위직 진출에 대해선 “군 출신 인사는 전역 후 몇 년간 정부에 들어가지 말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채명신 장군이 월남전에 참전했던 고엽제 피해자들에게 정부가 보상해 줘야 한다고 지적했는데.
“당연하다. 국가를 위해 희생한 이들에게 보상과 명예를 줘야 나라의 존립기반이 생긴다. 이젠 대한민국에 그만한 국력이 있다.”

-싱가포르의 리콴유 전 총리는 ‘통일을 위해 전쟁을 한다는 건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길 뿐’이라고 했는데.
“우리는 정전상태라는 엄중한 현실을 잊어선 안 된다. 어떤 경우에도 전쟁을 막아야 한다. 그러나 전쟁 대신 대화를 할 수 있는 조건은 압도적인 억제력을 갖춰야 한다는 거다. 유비무환이 중요하다. 김구 선생은 ‘안보는 산소 같은 것’이라고 했다.”

-북한의 핵 위협에 대해선 어떻게 해야 하나.
“우린 핵무기가 없다. 그러나 국제사회의 원조를 받는 나라(북한)가 어떻게 전쟁을 일으키겠는가? 다만 북한이 기습적으로 어리석은 도발을 할 수 있다는 경계심은 갖고 있어야 한다. 북한 단독으로 전쟁할 힘은 없고, 있다면 국지도발밖에 없다. 2003년 이라크전쟁 이후 무기체계가 더욱 발달해 가공할 위력을 갖게 됐다. 전쟁이 개시되면 30분이 아니라 몇 분 만에 남북이 공멸하는 상황이 올 수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남북이) 어떤 오판도 해선 안 될 것이다.”

-북한의 선군정치는 어떻게 봐야 하나.
“북한은 ‘군대라는 지붕이 튼튼해야 안전하다’는 마키아벨리의 논리에 너무 경도된 것 같다. 지붕만 튼튼하면 뭐 하나? 안에 살림살이가 없는데 말이다. 북한의 기득권 세력 10만 명은 잘산다. 특히 북한군 고위 간부 1500여 명은 ‘개혁·개방이 되면 우리 입지가 사라진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하지만 세상은 바뀌었다. 북한은 개혁·개방으로 나가야만 살 수 있다.”

-미국이 이라크전쟁을 개시할 때 군인 출신 콜린 파월 국무장관은 신중론을 폈는데.
“맞다. 전쟁에 대해선 군인들이 민간 정치인보다 더 신중할 수 있다. 무기란 게 뭔지, 전쟁을 하면 어떤 피해기 생기는지 더 잘 알기 때문이다. 『손자병법』에도 ‘싸우지 않고 이기는 게 최상’이라고 했다.”

-일본이 최근 급격히 우경화되면서 1930년대 군국주의 식으로 가고 있다. 이런 일본 때문에 한·미·일 협력이 어려워지고 있는데.
“미국엔 한·미 동맹도 중요하지만 아직은 미·일 동맹이 더 중요할 것이다. 미국은 일본에 이지스함 기술도 전수했다. 우리의 딜레마다. 우리는 아직도 일본에 배워야 점이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이 우경화를 계속하면 일본의 장래는 불행하게 될 것이다.”

-미국은 대륙별로 영국과 이스라엘·일본이 연대의 축이다. 그런데 일본은 한국·중국·러시아와 각각 갈등하고 있다. 이런 일본 때문에 미국의 아시아에서 입지가 좁아질 것이란 우려가 있다.
“맞다. 이미 중국에선 일본 차나 일본 상점들이 ‘나는 중국과 중국인을 사랑한다’는 스티커를 붙이기 시작했다. 중국 내에서 반일감정이 고조되면서 나온 방어 제스처다. 곧 한국·러시아도 같은 상황이 될 것이다. 동북아의 평화를 위해선 중국은 북한에 자제를 설득해야 하고 미국은 일본의 자제를 설득해야 할 것이다. 일본은 자중자애해야 한다.”

-우리 안보를 위해 해군과 공군이 강화돼야 한다는 견해가 있다.
“맞다. 공군과 해군이 강화돼야 한다. 미국이 해군과 공군을 지원해 주니까 한국군은 지상군 중심으로 가야 한다는 고정관념은 버려야 한다. 우리 군의 안보전략회의에 합참의장과 국방부 장관, 육·해·공군 참모총장이 모두 참여하게 해야 한다. 2010년 천안함 사태 때 해군이 그 회의의 주요 위치에 끼지 못했다. 큰 문제다.”

-제주 해군기지 논란은 어떻게 봐야 하나.
“기지는 필요하다. 제주도는 중국과 일본 사이에 있다. 일제시대 일본은 군인 7만 명을 제주도에 파견했다. 그만큼 군사전략적으로 중요한 지역이다.”

-제주도에 해군기지를 짓되 세계에서 처음으로 화석연료가 없는 섬이 되도록 지원하면 어떨까.
“맞다. 호주의 시드니나 미국 샌디에이고 등은 모두 중요한 해군기지인 동시에 세계적인 관광지다. 제주도도 그렇게 되도록 정부가 적극 지원해야 한다.”

-대북특사를 신설해 북한과의 대화를 조직화해야 한다는 의견이 있다.
“좋은 생각이다. 남북이 지금처럼 치킨게임만 계속하면 결국 공멸한다. 공식·비공식 대화채널이 모두 필요하다. 국회가 대북특사제도를 만들고 청문회에서 통과시켜 활동반경을 보장해야 한다. 특사의 임기는 5년 또는 그 이상으로 하고, 국회의원이나 대통령 출마는 금지시켜 남북 관계를 정치적으로 이용하지 못하게 해야 한다. 과거 대북채널로 활동했던 김우중 전 대우 회장이나 정주영 전 현대 회장처럼 기업인을 활용할 필요가 있다.”

-존폐 위기에 놓인 개성공단은 어떻게 해야 하나.
“북한에 대한 투자는 중국도, 독일도 실패했다. 개성공단마저 실패하면 북한에 대한 국제사회의 믿음이 완전히 사라질 것이다. 공단이 불안하지 않아야 투자가 일어난다. 앞으론 북한에 투자를 하더라도 우리만이 아니라 다른 나라들과 유엔 등 국제조직이 함께 참여해 신뢰를 높이고 리스크에 공동 대응하게 해야 한다.”

-정부가 러시아와 북한을 거쳐 우리 땅에 들어오는 천연가스관 사업을 구상 중인데.
“러시아와 협력하는 게 중요한 사안이다. 한·미, 한·중 정상회담에 이어 한·러 정상회담을 해야 한다. 다만 가스관 사업은 위험한 요소가 있는 만큼 안정성을 높이기 위해 다국적 기업들의 공동 참여가 필요하다.”

-후배 군인들이 박근혜정부에서 국정원장 등 요직에 올랐다.
“군인은 정치에 참여해선 안 된다. 군복을 벗은 뒤에도 최소한 몇 년은 외부에 있다가 정부에 들어가야 한다. 또 군의 인재 등용에도 균형이 필요하다. 한쪽으로만 승객이 몰리면 버스는 기울어진다. 육군과 해군, 공군의 조화가 필요한 것이다. 일례로 합참의장 밑에는 육·해·공군 작전부장이 모두 있어야 한다.”

-인생이란 무엇일까.
“이익을 추구하고 행복을 찾는 것이다. 행복한 삶이란 본인도 남도 행복하게 하고, 나아가 국가에 이바지하는 것이다. 나는 장관에서 물러난 뒤 기업체에 가지 않았다. 건강이 중요하다. 건강을 위해선 시간과 노력을 투자해야 한다. 또한 후학을 키우는 게 큰 행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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