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漢字, 세상을 말하다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321호 27면

자포자기(自暴自棄)는 오늘날 될 대로 되라는 식의 체념의 뜻을 나타낼 때 자주 사용한다. 절망한 끝에 스스로를 포기하고 돌아보지 않는다는 이야기다. 그러나 맹자(孟子) 이루(離婁)편에 이 말이 처음 등장할 때는 뜻이 조금 달랐다.

自暴自棄<자포자기>

맹자는 “스스로 해치는 자와는 더불어 말할 수 없고 스스로 버리는 자와는 더불어 일할 수 없다(自暴者 不可與有言也 自棄者 不可與有爲也)”고 했다. 보통 ‘사납다’는 뜻으로 쓰이는 포(暴)가 여기서는 ‘해친다’는 뜻으로 사용됐다.

무엇이 스스로를 해치는 ‘자포’이고 또 무엇이 스스로를 버리는 ‘자기’인가. 맹자는 설명하기를 예의(禮義)를 비방하는 것을 ‘스스로 해친다’고 했고, 내 몸이 인(仁)에 거처하고 의(義)를 따라 행하지 않는 것을 ‘스스로 버린다’고 했다(言非禮義 謂之自暴也 吾身不能居仁由義 謂之自棄也).

맹자는 이어서 ‘인(仁)은 사람의 편안한 집이고 의(義)는 사람의 바른 길인데 사람이 이 편안한 집을 비워두고 살지 않으며 바른 길을 버려두고 행하지 않으니 슬프다(仁 人之安宅也 義 人之正路也曠安宅而弗居 舍正路而不由 哀哉)’고 탄식했다.

최근 폐쇄로 치닫고 있는 개성공단 사태를 보며 생각나는 게 이 맹자의 말씀이다. 북한이 핵을 버림으로써 한반도를 한민족의 편안한 거처로 만들고, 경제를 발전시킴으로써 남북한 공동 번영의 길이라는 바른 길을 가려 하지 않으니 참으로 답답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개성공단 사태가 이렇게 악화된 데는 먼저 개성공단 근로자를 출근시키지 않는 강수를 두며 기(氣)싸움을 유도한 북한 지도부의 책임이 우선이다. 자신이 만든 줄로 제 몸을 스스로를 묶는다는 자승자박(自繩自縛)이요, 자신이 저지른 일의 결과를 자신이 감수해야 하는 자업자득(自業自得)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 못난 아우와 똑같은 방법을 취하는 것도 우리가 할 바는 아닐 것이다.

‘만약 전생의 일을 알고자 한다면 금생에 받는 것을 보면 알 수 있고, 내생의 일을 알고자 한다면 금생에 행한 일을 보면 알 수 있다(欲知前生事 今生受者是 欲知來生事 今生作者是)’. 법화경(法華經)에 나오는 말이다. 모든 결과는 뿌린 대로 거두게 된다는 것이리라.

남북 모두 앞으로 어찌할지에 대해 조용히 자문자답(自問自答)하는 시간을 가져 보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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