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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름 안생기는 봉합사, 쓰고 싶어도 안된다니!

온라인 중앙일보

입력

외과 수술이라는 것은 병든 환부를 도려내고 잘라낸 부위를 다시 연결 내지 복원하고 절개하고 들어간 피부를 봉합하고 나오는 것이다. 환자가 별탈 없이 순조롭게 회복하려면 도려낸 수술부위에 새살이 잘 돋아 나오고 봉합한 상처가 잘 아물어 주어야 한다. 상처가 잘 아물려면 적어도 세 가지 조건은 충족되어야 한다.

첫째, 수술받는 환자의 전신상태와 상처부위의 상태가 좋아야 한다. 환자가 고령이라든지, 빈혈, 영양실조, 당뇨, 면역기능저하등이 있으면 상처치유가 잘 안되거나 지연된다. 또 상처에 이물질(foreign body)이 있거나, 이미 염증이 있거나, 혈액 순환이 나빠도 상처 치유가 잘 안된다.
둘째, 상처를 봉합하는 봉합사가 좋아야 한다. 당연한 얘기다. 좋은 봉합사란 조직 내에서 이물질 반응(foreign body reaction)이 적어야 한다. 이물질 반응이 많이 일어나면 상처가 아무는데 방해가 되기도 하지만 봉합사를 중심으로 염증이 생긴다는 것이다. 염증이 생기면 당연히 상처 치유는 지연된다.
셋째, 잘 꿰매 주어야 한다. 바느질을 잘 해주어야 한다는 뜻이다. 상처에 빈 공간이 없도록 정확히 아귀를 잘 맞추어 줘야 한다. 너무 꽉 꿔매주거나 촘촘히 꿔매주면 상처부위로 들어 오는 혈액 순환이 나빠져 상처가 더 더디게 낫는다. 말하자면 옷을 꿰맬 때 옷 재질이 너무 낡았거나 처음부터 재질이 나쁜 상태이고, 꿰매는 실도 잘 끊어지는 저질 봉합사이고, 바느질도 경험 없는 초짜라면 결과가 뻔한 것과 마찬가지다.

갑상선 수술은 다른 수술보다 상처치유과정에서 비교적 말썽이 적다. 그러나 수술자국이 눈에 띄는 앞목이기 때문에 상처치유과정에서 문제가 생기면 흉터가 보기 싫게 되어 환자가 실망을 한다.
우짜든동 흉터가 잘 안보이게 깜쪽 같이 해달라는 요구가 높은 수술이기 때문에 신경을 많이 써야 한다. 암수술도 잘 되고 흉터도 깜쪽같이 해야 되고.... ... 어렵다 어려워.....
필자가 오랫동안 갑상선 수술을 해 오면서 느끼는 것은 나이가 젊든 많든 여자든 남자든 수술 흉이 덜 지고 예쁘게 해 달라는 부탁이 최근에 가까워올수록 점점 많아진다는 것이다.
그 전에는 흉터 걱정보다는 어떡하든 암을 철저히 제거해서 재발없이 오래 동안 잘 살게 해달라는 부탁이 많았는데 지금은 많이 달라졌다.

옛날에 수술받은 환자들을 보면 흉터 길이도 길고 흉터 두께도 지금의 시각으로 보니까 미안할 정도로 길고 두껍다.
그 때는 미국에서 "암수술할 때는 절개선을 아끼지 말고 수술시야를 넓게 해서 암조직을 철저히 제거해야 된다" 고 배웠기 때문인 것도 있지만, 당시에는 마취기술도 지금과 비교하면 좀 불안했고, 수술경험도 좀 그저 그랬고 해서 암을 철저히 제거하고 안전하게 수술하려고 수술시야를 시원하게 크게 넓혀 수술을 해야만 되기도 했기 때문이다.

당시에는 환자도 의사도 절개선의 미용 문제는 크게 신경을 안 쓴 것도 사실이다. 뿐만 아니라 그때에는 수술기구도 지금과 달리 정교한 것도 아니었고 수술봉합사도 실크로 제조된 것이 대부분이어서 아무리 수술을 깨끗하게 잘 해도 이 실크 봉합사 때문에 수술 후에 애를 많이 먹었다.
저렴한 국내산 실크 봉합사는 수술후 이물질 반응(foreign body reaction)과 봉합부위 농양 형성(stitch abscess)을 잘 일으켰기 때문이다.결국 환자도 고생하고 의사도 고생하고 비용은 비용대로 더 들고...........

세월이 흘러 수술경험도 더 쌓이고 마취도 안정되고 수술기구도 정교해지고 수술 봉합사도 수입 고급품으로 대체되고 해서 수술절개선도 짧아지고 수술 후 봉합사 문제도 점점 적어지게 되었다.
그래도 "깜쪽 같이" 라는 요말 때문에 필자는 우짜든동 환자들의 희망대로 절개선 흉터를 개선시키려 노력해 오고 있다. 물론 암수술의 원칙을 지키면서....
필자 나름대로의 노하우는 다음과 같다.
(1) 절개선을 너무 아래 흉골 가까이 넣으면 소위 켈로이드 비스무리한 두꺼운 흉터가 잘 생기므로 환자를 앉히고 흉골에서 손가락 하나 내지 두횡지 높게 피부 주름을 따라 절개선 디자인을 한다. 누운 자세에서 하면 나중에 절개선이 흉골 근처나 그 아래로 내려가서 목이 움직일 때 마다 지랫대의 축과 같이 되어 흉터조직이 두꺼워 질 수 있기 때문이다.
(2) 너무 짧은 절개선은 피한다. 수술시야 확보를 위해 견인기구로 절개면을 위로 땡겨야 하기 때문에 절개면이 자극을 받아 흉터가 두꺼워질 수 있기 때문이다.
(3) 수술시 절개선 보호를 위해 실라스틱 제질로 절개선을 카버한다.
(4) 피부봉합은 피부밖에서 꿔 매는 단속봉합(interrupted suture)대신에 꿔맨 자국(stitch mark)이 보이지 않게 피하에서 꿔 매는 피하 연속봉합(subcuticular suture)방법으로 대체한다. 이 때 쓰는 봉합사는 맥손(Maxon)이라고 하는 인조 봉합사인데 2개월지나면 자연 흡수되기 시작하기 때문에 과거처럼 실을 뽑을 필요가 없다.

그 전에는 실을 뽑으면 봉합선이 벌어져 흉터가 굵어지는 수가 있었는데 봉합사가 피하에서 절개면을 계속 단단히 땡겨 주기 때문에(tensile strength) 절개선 흉터가 벌어지지 않고 가느다랗게 남을 수 있다는 이점이 있는 것이다.
근데 단점도 있다. 피하봉합 때 실이 풀어지는 것을 막기 위해 피하 매듭을 봉합시작 부위와 끝 부위에 만들어야 하는데 이 매듭이 이물질 반응을 일으켜 작은 고름집이 생기는 수가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몇몇 환자에서 생긴 일이 있다. 이때는 매듭을 제거히고 항생제를 며칠 쓰면 해결되기는 한다..
어떤 환자는 매듭농양은 안생겼지만 양쪽 절개선 끝 부위에 이 매듭이 까만 점으로 보이기 때문에 놀라서 병원으로 달려 오기도 한다. 그냥 두면 흡수되거나 떨어져 나오는 것이 보통인데 .....환자가 되어보면 뭐든지 불안한기라.

Maxon 봉합사의 단점을 어떻게 해결하나 고심하던 끝에 찾아낸 봉합사가 "V-LOC" 이라는 미국 COVIDIEN 회사에서 나온 제품이다. 원래 내시경 수술할 때 쓰는 봉합사로 개발 된 것인데 실매듭을 만들지 않아도 봉합후에 실이 빠지지 않는 장점이 있다.
바로 이것이다. Maxon 대신에 이걸 쓰면 되겠다 싶어 써보니 좋다. 매듭이 없어니까 봉합부위농양이 안 생긴다. 단점은 가격이 Maxon은 3천 얼마이고 V-LOC은 2만 얼마 한다는 것이다.. 그래도 그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되어 계속 쓰고 있는데 며칠 전 병원 보험 심사파트 치료재료 담당한테서 멜이 날라 온다.

절개방법 갑상선 수술에서 이 봉합사를 쓰면 보험공단에서 비용 지불이 안된다는 것이다. 왜 그러냐고 항의하니까 원래 내시경 수술때 쓰라고 허락 된 것이니까 내시경 수술이 아닌 경우에 쓰면 인정이 안된다는 것이다. 보건복지부:심사평가원에서 그렇게 결정된거란다.
"그럼 환자가 부담하면 되는 것 아니냐?"고 하니까 임의비급여이기 때문에 그렇게 하면 전부 환수초치를 당하여 병원에 손실을 끼친다는 것이다. 세상에나.....여기가 북한 땅이냐? 이런 불합리가 .......
"밥숟가락은 밥 먹을 때 사용하라고 만들어 진 것이기 때문에 수박이나 다른 걸 끍어 먹을 때 쓰면 안된다"는 논리와 뭐가 다른가 말이다. 환자에게 이득이 되는 수술재료를 일선 외과의사가 전문가의 관점에서 쓰겠다는 데 보건복지부:심사평가원이 말도 안되는 논리로 이를 막는다니 도대체 누구를 위한 보건복지부인지 모르겠다.

대한민국 의사는 아무리 환자를 위해 머리를 쓰고 잘 해주고 싶어도 전문가가 아닌 엉뚱한 사람이 책상위에서 된다 안된다 위세를 부리고 있으니 이거 뭐 김이 새서 어디 일할 맛이 나겠나..........
결국 불쌍해지는 것은 환자 밖에 더 있겠어?........에라이....슬슬 열받기 시작하네.....혈압도 굼틀굼틀 하네...........


☞박정수 교수는...세브란스병원 외과학 교실 조 교수로 근무하다 미국 양대 암 전문 병원인 MD 앤드슨 암병원과 뉴욕의 슬론 케터링 암센터에서 갑상선암을 포함한 두경부암에 대한 연수를 받고 1982년 말에 귀국했다. 국내 최초 갑상선암 전문 외과의사로 수많은 연구논문을 발표했고 초대 갑상선학회 회장으로 선출돼 학술 발전의 토대를 마련한 바 있다. 대한두경부종양학회장, 대한외과학회 이사장, 아시아내분비외과학회장을 역임한 바 있으며 국내 갑상선암수술을 가장 많이 한 교수로 알려져있다. 현재 퇴직 후에도 강남세브란스병원에서 주당 20여건의 수술을 집도하고 있으며 후진 양성에도 힘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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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수 교수 기자 sohopeacock@naver.com <저작권자 ⓒ 중앙일보헬스미디어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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