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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북한 취재일기

한 점 빛으로 남은 개성공단 살려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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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정용수
정치국제부문 기자

기자가 서부전선 최전방 도라 전망대에 도착한 건 지난달 30일 오후 7시10분. 개성공단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곳이다. 서울 용산 국방부에서 직선거리로 48.1㎞ 떨어진 곳으로, 행정구역상엔 경기도 파주시 장단면 제3땅굴로 310로 돼 있다. 개성공단 좌측 진봉산 자락에 걸려 있는 태양은 피를 토하듯 주변을 붉게 물들이고 있었다. 해넘이 직전 마지막을 불태우는 듯한 자태는 한 폭의 그림 자체였다.

 잠시 후 산 아래쪽 평지로 시선을 돌렸다. 공단은 그러나 눈을 몇 차례 깜박이며 집중해야 보일 정도로 초라한 모습이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가로등 불빛과 근로자들을 태우고 오가는 자동차 불빛들로 불야성을 방불케 했다는 게 안내자의 설명이었다. 수십 차례 개성공단을 다녀온 기자에게도 이처럼 암흑과 적막에 에워싸인 개성공단은 낯설게 느껴졌다. 중립국감독위원회에 파견된 외국군들도 이 모습을 보곤 “어둡다, 너무 어둡다(dark, very dark)”를 연발했다. 휘황한 불빛에 가려져 평소엔 보이지 않던 자남산 자락 김일성 동상을 비추는 불빛만이 유난히 빛나고 있었다.

 60년 전 이곳은 임진강 북쪽을 차지하려는 우리 해병대와 이를 저지하려던 중공군이 사투를 벌였던 격전지였다. 정전(停戰) 50년이 되던 2003년 6월 30일 마침내 이곳에 개성공단 착공식이 열렸다. 정·경 분리라는 원칙 속에 천안함 폭침 사건이 발생했어도, 남북이 250여 발의 포탄을 주고받았던 연평도 포격전 속에서도 공단은 멈추지 않았다. 그래서 개성공단은 ‘남북관계의 옥동자’ ‘마지막 산소호흡기’라는 별칭으로 불렸다.

 그랬던 개성공단은 지난달 9일 북한 근로자들이 철수하면서 존폐의 위기에 처했다. 마지막 한 점 빛으로 남아 있는 개성공단을 보면서 문득 저 불빛마저 꺼져버린다면 어떻게 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부 자원 고갈로 경제적 난관을 겪고 있는 북한은 개성공단이 폐쇄될 경우 해외 투자 유치 노력은 물거품이 될 것이다.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를 내걸고 있는 박근혜정부 역시 첫걸음부터 꼬일 가능성이 있다.

 이때 문득 이런저런 행사장에서 기자와 만나 건넸던 북한 당국자들의 말이 떠올랐다. “개성공단은 이제 남쪽 땅이야요-.” 그렇다. 그들 역시 개성공단에 기대와 희망을 걸고 있다는 뜻이었다. 그렇다면 희망은 남아 있다. 김정일 전 국방위원장이 개성공단 부지를 내놓으면서 내렸던 ‘통큰 결단’의 정신을 헤아린다면 해법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북한 당국이 현명한 결단을 내려 마지막 남은 불씨를 활활 타오르게 하는 그날이 오기를 간절히 기대해본다.

정용수 정치국제부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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