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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터지냐 빠르냐 … 부동산처럼 유행 따라 변한 '황금 주파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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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1960년대 중반에 평당 300원 하던 말죽거리가 지금의 양재동이 되고, 70년대 배나무가 무성하던 밭에 압구정동 현대아파트가 들어서고…. 허허벌판이 노른자위가 된 강남 개발의 전설이다. 이런 일은 통신계의 농토, 주파수에서도 낯설지 않다. 당대 기술과 소비자의 사용 행태, 국제 표준에 따라 주파수 몸값도 롤러코스터를 탄다.

 가장 중요한 요인은 ‘요즘 인기 있는 농산물’이다. 산간·도서 ‘어디서나 잘 터지는’ 음성 통화 품질이 중요했던 2G에서는 1㎓ 이하의 저대역 주파수 700·800·900㎒가 각광받았다. 낮은 주파수는 고층 건물 같은 장애물을 만나면 휘어지는 회절성이 좋은 대신 전송 가능한 정보량이 적다. 그래서 해상이나 항공통신 같은 장거리 통신에 적합하다. 소비자의 관심이 ‘빠른 모바일 인터넷’으로 쏠리면서 ‘황금주파수’ 대역도 옮겨왔다. 주파수가 높을수록 전파가 직진하려는 성질이 강해 넓은 면적을 커버하기 곤란하지만, 정보를 대량으로 전송할 수 있어 초고속 통신에 알맞다. 이 때문에 스마트폰 시대인 3G와 4G에서는 통신사들의 시선이 고주파수 대역으로 향했다. 2011년 주파수 경매 때에는 LG유플러스가 2.1㎓ 대역을 할당받았고, SK텔레콤은 1.8㎓ 대역을 차지했다. 이 망들은 모두 4G 롱텀에볼루션(LTE)용으로 사용된다.

 글로벌 표준에 따라 주파수의 운명이 뒤집히기도 한다. 2010년 주파수 할당 때 KT는 원래 갖고 있던 1.8㎓ 주파수 중 20㎒ 폭의 대역을 반납하고 그 대신 900㎒ 대역을 골라 갔다. 당시만 해도 유럽위원회(EC)가 900㎒에 3G 서비스를 허용하고 스웨덴이 이 대역에서 LTE 서비스를 하기로 하는 등 국제 전망이 밝아 보였다. 하지만 LTE 글로벌 표준은 1.8㎓로 정해졌고 현재 900㎒를 LTE로 활용하는 사업자들이 많지 않다. 1.8㎓와 900㎒ 대역의 운명이 바뀐 것이다. KT는 보유한 900㎒ 주파수 대역을 보조 LTE 망으로 활용할 계획이다.

 농산물 시세에 따른 수요 변화와 마찬가지로 통신 상품에 따라 주파수의 활용도가 달라지기도 한다. 3G 데이터 무제한 요금제가 나온 뒤 3G용 2.1㎓ 주파수의 쓰임새가 늘어난 것이 그 예다. 무제한 요금제 출시로 소비자들의 무선 인터넷 사용량은 급증했고, 이 대역에 40㎒ 폭을 보유한 KT는 물론 60㎒를 확보한 SKT도 트래픽 부담을 느끼게 됐다. 농산물을 떨이로 팔자 수요가 급증해 공급난을 불러온 셈이다.

심서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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