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야구] 민다고 다 이기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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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NC 주장 이호준(37·사진)이 삭발을 했다. 이호준은 지난달 30일 마산 LG전을 앞두고 머리카락을 짧게 자르고 나타났다. 팀 최고참의 결의에 찬 행동에 후배들은 긴장했다. NC는 9연패 중이었다.

 이호준은 선수들을 모아 “너희는 절대 삭발하지 마라”고 했다. 야구 선후배 간에는 엄격한 위계질서가 있다. 선배가 삭발을 하고, 후배가 머리를 기르는 모습이 오히려 더 어색하다. 하지만 이호준은 홀로 삭발했다. 삭발을 통해 “집중하자”는 메시지를 전달하면서도 성인이 된 선수들의 자율도 존중하는 ‘중도’를 걸었다. NC는 이날 LG에 2-1로 승리하며 연패를 끊었다. 이겼으니 이호준의 행동은 ‘삭발 투혼’으로 불렸다.

 이호준에 앞서 삭발을 한 주장이 두 명 더 있다. 한화 주장 김태균(31)은 지난달 11일 동료들과 함께 단체 삭발을 했다. 정현석(29)은 눈썹까지 밀며 주장의 뜻에 동참했다. 한화도 9연패 중이었다. 하지만 단체 삭발은 승리를 부르지 못했다. 한화의 연패는 13경기까지 이어진 뒤 끝났다. 정근우(31·SK)도 팀이 위기에 몰린 지난달 23일 삭발을 한 채 부산 롯데전에 나섰다. 이날 정근우는 2개의 홈런을 쳤지만 팀은 패했다. 삭발과 경기력의 상관관계는 증명된 바 없다.

 외국인 선수들은 머리를 빡빡 미는 한국 선수들을 이해하기 어렵다. 한 외국인 선수는 “군대식 문화, 지극히 동양적인 문화다. 과학적이지 않다”고 말했다. 이만수(55) SK 감독의 생각도 같다. 지난해 SK가 연패에 빠졌을 때 이광근(52) SK 수석코치가 삭발을 하고 나타났다. 이 감독은 이 코치에게 “ 절대 그러지 말라”고 당부한 뒤 “연패를 끊을 수 있다면 나부터 삭발하겠다. 그러나 삭발은 승패에 아무런 영향도 끼치지 않는다. 선수들도 성인이다. 감독이라도 머리 모양을 가지고 이야기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삭발 효과는 허구에 가깝다. 고참의 삭발에 오히려 부담을 가지는 후배들도 있다. 젊은 선수들에게 삭발은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의식에 불과하다. 주장의 의도와 다르게 ‘공포정치’로 느껴질 수도 있다.

 ◆이호준 삭발 후 NC 2연승=NC는 1일 창원 마산구장에서 열린 LG전에서 4회 터진 김태군의 3점 홈런에 힘입어 7-6으로 승리, 시즌 두 번째 2연승을 기록했다. KIA는 잠실에서 장단 14안타를 몰아쳐 두산에 8-1 대승을 거뒀다. 대구에서 넥센은 시즌 7호 대포로 홈런 공동 선두에 오른 이성열의 활약으로 삼성을 8-5로 이겼다.

하남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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