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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 과잉교육 정신적 부작용 크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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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23면

'내 말 좀 들어보세요'.

아이들이 무슨 생각을 하고 어떻게 느끼는지를 알고 대처하는 것은 어른들의 의무다.

지난달 15일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유엔 아동권리위원회는 아이들의 일을 결정할 때 주체가 되는 그들을 철저히 소외시킨 채 매사를 결정하는 한국의 현실을 아동 권리 침해 사례로 지적했다.

학교운영위원회 등의 학생 참여, 이혼가정 자녀가 부모를 볼 권리 등이 보장되지 않는 점은 물론 체벌, 강요된 조기 교육, 과도한 입시교육 등도 문제점으로 꼽혔다.

유엔의 아동권리협약에 따르면 아이들은 어른들에게서 식사.질병.나쁜 환경 등으로부터 '보호(protection)'받고 교육과 놀이터를 '제공(provision)'받으며 자신의 의사를 표현하고 의사결정 과정에 '참여(participation)'할 권리가 있다.

한양대 의대 소아정신과 안동현 교수는 "아이들도 인격이 있고 각자의 시각이 있다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고 들려준다.

안교수는 "아이에게 강제적인 교육을 하면 자기가 해야 할 모든 일에 흥미를 잃거나 두려움을 갖게 된다"며 "정서 불안, 흥미와 자신감 상실, 창의력 감퇴, 지나친 의존 혹은 반항적 태도, 학습 거부 등이 나타난다"고 밝힌다.

예컨대 싫어하는 피아노를 억지로 시키면 피아노 치는 일뿐 아니라 그 일을 강요하는 부모에 대한 반항심도 같이 생기게 된다.

아이를 교육시킬 땐 성장발달에 따라 적절한 내용을 적절한 만큼 주입해야 하며 아이의 뇌에 과부하가 걸리지 않도록 하는 것도 중요하다.

서울대 의대 소아정신과 조수철 교수는 "뇌는 자극을 심하게 받으면 뇌세포 간에 별도의 네트워크를 갖게 된다"며 "이 네트워크가 긍정적으로 작용할 땐 총명함으로 나타나지만 부정적으로 나타날 땐 정신질환이 생길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한다.

부모들은 영재는 타고나며 인위적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는 점도 인식해야 한다. 조수철 교수는 "부모가 영재교육을 시키기 전에 우선 아이의 능력을 제대로 평가하는 것이 급선무"라고 조언한다.

이를 위해선 유아기엔 제대로 자라고 있는지를 알아보는 발달평가를, 5세 이후엔 지능(IQ)검사.적성검사 등을 받아보면 도움이 된다.

일례로 조기 외국어 교육도 아이의 능력에 따라 시켜야 한다.조교수는 "외국어를 제대로 학습하고 받아들일 만큼 뇌의 전두엽이 발달하는 시기는 평균 7세"라고 설명한다.

만일 언어 능력이 특별한 아이라면 이보다 일찍 시켜서 좋은 효과를 볼 수 있다. 반면 능력도 없고 한글도 제대로 못익힌 아이에게 외국어를 강요하면 모국어마저 제대로 못배우는 경우가 발생한다. 또래의 다른 아이와 수평적으로 비교해 학습을 강요하진 말아야 하는 것이다.

그러면 타고난 능력을 바탕으로 보다 현명한 아이로 키우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조교수는 "자연스러운 성장.발육과 함께 5감(시각.청각.촉각.미각.후각)을 통해 자연스럽게 여러 자극을 받도록 해야 한다"고 권한다.

예컨대 청각을 발달시키고 음악성을 높이려면 어린 나이에 억지로 악기를 가르치는 것보다는 재미있고 따라하기 쉬운 연령에 맞는 음악을 많이 들려주는 게 좋다.

황세희 전문기자.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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