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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키호테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1면

국보도난사건의 전말은 유쾌한 단편이라도 읽는 기분이다. 굳이 「단편」에 비유한 것은 일말의 「모럴」같은 것이 엿보이기 때문이다. 우선 범인이 남겨놓은 쪽지부터 「픽셔널」하다. 『11시경에 알리겠음』이나 「세계신기록」운운한 것으로 보아 장난 스럽다. 그러나 천격심리만은 아닌 것같다. 다분히 「돈키호테」적인 「메타포」(합??성)도 갖는다.
우선 그 불상이 허술하게 간수되고 있었던 것부터 문제다. 아기들의 과자상자 정도로나, 꺼내도 좋을만하게 장치가 되어있었다. 국보도 국보지만, 고구려불상이 얼마나 귀중한 가치를 갖는지에 당국자는 무관심했다. 외국의 경우는 대개 「이미네이션」(모조품)을 전시한다. 진품은 방습·방부등 특수장치속에 따로 보관한다. 학자의 진지한 학구적요청이 없이는 공개조차 않는다. 진품이 없는 모조는 무가치하다. 그러나 진품을 뒤에 숨겨 놓은 모조는 빛을 낼 수 있다.
일제때도 경주박물관의 금관을 도난당했던 소동이 일어났었다. 그것은 통일신라의 진품이었다. 6개월만에 일인관장의 기지로 금관은 다시 찾았다. 「오사까·긴따로」(?) 관장은 그 금관은 특이한 금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용해할 수도 없으며, 그것을 갖고 있으면 패가한다는 「루머」를 만들어 퍼뜨렸었다. 지금 전시된 금관은 그 사건후에 만들어진모형이다.
미국 「하버드」대학교에는 「구텐베르크」의 가동인쇄기로 출판한 초판 「라틴」어성경(1450∼55)한권을 특수유리관에 전시하고 있다. 이것을 위해 「가드」가 당시 24시간 그 유리관옆에 보초를 선다. 우리의 고구려불상은 그보다 적어도 1천년은 앞선 것이다.
관사들은 편리한대로 『예산이 없다』고 말한다. 범인의 말투를 빌면 『약은수작』이다. 예산을 확보할 만한 설득력은 갖고 있어야, 문화재에 관계하는 관사의 긍지가 돋보이지 않겠는가.
이번 사건은 「해피·엔딩」으로 끝이 났다. 경찰의 수사력도, 관리의 「위트」도 아닌 바로 범인 스스로의 결단에 의한 것이다. 범인까지도 『문화재적 가치가 높다하니…』(전화로)하고, 불상을 되돌려 주었다. 다행한 것은 대중화한 「문화재의식」이다. 신문의 공이라면 더욱 흐뭇하다. 다만 그런 의식이 뒤떨어진 것은 문화재를 「다루는」관사들과, 예산을 「나누는」국민의 공복들이다. 범인은 바로 그들에게 찬물을 끼얹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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