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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획의 논리로 돌아가자"|새 경제각료에 기대하는 정책전환…남덕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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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이번의 개각을 계기로 하여 정책기조에 어떠한 전환이 있을 것이라고 기대하는 사람이 많다. 전임자들의 경제행정의 특징이 흔히 「확대주의」 「독주」 또는 「강행」이라는 말로 표현되어왔던 만큼 신임장관에게는 보다 온건·착실한 정책을 기대하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신임장관은 지금까지 몇 가지 당면문제에 관한 시정방침을 밝혔으되 거기에서 어떠한 정책기조의 변화를 암시한 것은 없는 것 같다. 하기야 신임장관이 하루아침에 새로운 정책체계를 품고 나올 수는 없는 일이고 또 실사 그가 평소에 마련한 경륜이었다 하더라도 당면문제처리에 여념이 없는 차제에 소홀히 정책기조의 변화를 내세우기 어려운 것도 짐작이 간다. 그러나 어쨌든 신임자들은 정책기조를 다시 가다듬어 국민 앞에 지지와 협력을 구해야할 처지에 있는 것은 사실이다.
흔히 정책기조는 정책담당자의 개성과 철학에 따라 달라진다고 한다. 그러기에 「인물이냐 정책이냐」하는 논쟁은 각국의 헌정사와 더불어 존재해왔다. 이런 점에서 새로운 정책담당자들이 상도 할지 모르는 몇 가지 관점을 논의해 보고자한다.
①민주적 자유기업제도는, 경제성장률은 국민이 결정한다는 원리 위에 서고 있다는 것을 생각할 필요가 있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일 국의 경제성장률은 다른 것도 있지만 주로 국민의 저축률에 의존한다. 그런데 국내저축의 대부분은 국민들의 자발적 저축성향에 의하여 결정되므로, 결국 성장률은 국민이 결정하는 것이 되는 것이다. 물론 후진국의 정부는 국민들의 저 저축률에 만족치 않고 그를 제고하기 위하여 백방의 선도적 역할을 다해야하는 것은 물론이다. 그렇다하여 위의 원리를 저버리면 경제정책의 민주적 기초를 잃게된다.
「3년 반」의 문제가 한창 시끄러웠을 때 국민들은 왜 「3년 반」이 필요한지 이해 할 수 없었고 일부 위정자들은 왜 국민들이 고속성장을 반대하는지를 이해하지 못한 것 같다. 이것은 위의 원리를 통찰하지 못한 것과 관련이 있지 않는가 한다. 위의 원리는 비단 저축이나 성장률뿐만 아니라 모든 문제에 적용된다. 이것은 의욕적인 지도자에게 안타깝기 짝이 없는 일이지만 그러나 어쩔 수 없는 일이다.
②계획적 발전을 추구하자면 계획의 목적을 짓밟지 말아야 한다. 모처럼 세운 계획을 무용화하거나 가용자원의 한계를 넘는 지출을 계획·집행하여 경제안정을 위태롭게 하고 투자자원의 배분에 있어서 정치적 편의가 경제적 합리성에 우선할 바에야 구태여 막대한 비용을 들여 계획을 세우는 의의가 없다.
경제적 부조정을 미연에 방지하자는 것이 계획의 목적인데 도리어 계획이 부조정의 원인이 필수 있다는 것이 후진국의 경제계획의 경험이 가르치는 교훈이다.
우리는 이러한 예가 되지 말기로 하자. 흔히 사람들은 계획과 실적사이의 거리가 계획의 유일한 평가척도처럼 생각하는데 이것은 천박한 평가에 불과하다. 계획의 책정한 성과는 실적의 상호균형과 그를 실현하기 위한 조정의 능률에 비추어 평가되어야한다.
③종합적 조정이 계획의 생명일진대 경제기획원은 각 분지정책의 유기적 제합을 제1차의 임무로 삼아야 한다. 그런데 기획원은 고차적인 조정자의 입장보다 경쟁자의 입장을 취해온 감이 없지 않다. 일례로 일방으로 물가의 안정화를 기약하면서 타방으로는 그 목적에 불리한 여러 가지 정책을 한꺼번에 휘몰아치는 따위이다.
제 정책이 효과면에서 어떻게 연관되며, 민간기업에 던지는 조정부담이 어떠한 것인지를 충분히 고려하여 정책의 내용과 선후를 선정하여야한다. 한가지 정책을 입안할 때에는 반드시 현존의 타 정책과 그리고 장기정책과의 관련을 논의해야 할 것이다.
「정부만능」의 사고방식을 고쳐 나가야한다. 경제적인 관점에서 본다면 민주제도하의정부는 한정된 자력과 행정력으로 국민의 공약수적 경제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단체에 불과하다.
우리나라의 소수기업주들은 정부의 편중적인 지원 하에서 자라왔건만 언필칭 정부지원의 부족을 욕하는 반면, 정부간섭을 몹시 싫어하기도 한다.
사실상 과도한 지원과 과다한 간섭이 한데 얽혀서 경제적 능률이 떨어지고 있는 것이 아닐까. 정부는 정부대로 만능의 착각에 사로잡혀, 과중한 일에 자력과 행정력을 분산시키고 있는 것 같다.
허다한「아이디어」가 새로운 제도와 기구와 시설과 사업을 낳고 있지만, 그 일부는 영양부족으로 제구실을 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그 결과의 일례라 볼 수 있다.
기업들의 과도의 정부의존의 폐습을 고치기 위해서는 자조자를 돕는 원칙을 확립하여야한다.
⑤경제개발을 연동경기에 비유한다면 우리의 정부는「레퍼리」와「코치」의 역할에 만족치 않고 선수로 뛰어드는 경향이 있다. 그것도 때로는 필요하리라.
그러나 우리나라의 선수(기업·근로자)들은 자타가 공인하는 바와 같이 경제발전에 적합한 자질을 가지고 있으므로 정부역할을 한정하는 편이 오히려 능률적일 것이다.「라인」안으로 뛰어들어 경기질서를 혼잡케 하는 것보다 차라리 경기장을 잘 닦아주고「라인」과 규칙을 확실·명백히 하여 스스로를 돕는 선수를 도와주면 경기의 성적은 저절로 향상되게 될 것이다.
⑥끝으로 질서와 규율이 없는 곳에는 발전이 있을 수 없다. 경쟁을 통한 능률이 기대되고 비능률에 제재가 가하여지는 것은 발전하는 사회의 필수조건이다. 소련사회의 관리자들은 잘못하면 감옥과「시베리아」로 쫓겨가는 공적제재를 받게되고 자본주의 사회의 비능률적인 관리자에 대해서는 경제적 손실이라는 사적제재가 가해진다. 형체가 다를망정 어느 경우에나 제재는 반드시 있는 것이고 또 있어야 한다.
만약 자본주의사회에 그러한 우승열패의「메커니즘」이 없었더라면 그 사회의 경제적 능률이 사회주의 사회를 능가하지 못했을 것이다. 모든 관리자의 책임의 소재를 분명히 하고 신상필벌의 원칙이 관철될 때 우리의 경제에는 규율이 서고 생산성이 높아질 수 있을 것이다. 비능률적이고 무책임한 공적·사적관리자들을 정부가 업고 다니는 일이 과연 없는지, 한번 생각해볼 문제이다.
이상 몇 가지 관점을 생각해 보았는데 어쨌든 지도자가 바뀌면 정책기조에도 변화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거기에도 시간은 걸릴 것이다.
너무 성급히 정책전환을 서두르면 그것이 비록 옳은 방향이라 하더라도 부작용이 격화될 수 있는 만큼, 우리는 그 점을 이해하면서 박 경제「팀」의 행방을 지켜보고자 한다. <필자 서강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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