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별거」2년만의 「이혼」|인니.중공관계 끝장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아·아신생세력의 거센 조류에 편승. 한때 서슬이 퍼렇던 부경=「자카르타」추측시대가 9일 정식으로 막을 내렸다.
65년 9월30일 「인도네시아」공산당의 불발「쿠테타」로 「수카르노」가 실각한때 이미 오늘의 사태가 예견되기는 하였으나 이로써 중공정권은 돌이킬수 없는 또하나의 외교적 패배로 맛본 것이다.
「인도네시아」정부의 9일의 단교통고는 비록 우파학생들의 압력이 크게 작용한것이기는 하나 두나라 외교관계의 명맥이나마 유지하려는 것이 중공의 속셈이었고보면 중공정권의 내우외환의 깊이를 짐작할수 있겠다.
불과 2년전만해도 「인도네시아」공산당은 그당원수와 조직면에서 소련.중공의 공산세력다음가느 세계제3위의 실력을 과시해왔음을 상기할 때 동남아정세의 급격한 변모에 놀라지 않을수 없다.
「인도네시아」의 단교선언의 근인의 하나가 주북평「인도네시아」외교공관에대한 최근의 홍위병의 난동으로 마각을 여지없이 드러낸 중고의 폭력외교의 불법성에있음은 다를여지가 없다.
동구공산국외교관에게까지 모택동의 초상앞에 강제로 머리를 굽히게하는등 국제법과 외교관례를 무시한 중고의 무법외교가 앞으로도 계속된다면 그에 알맞는 보복을 면치못할 것이라 함은 이번의 중공=「인도네시아」단교가 시사해주는 것이다. 지난8월의 동남아국가연합(ASEAN)의 탄생은 오랫동안 빙탕의 관계에 있던 「인도네시아」와「말레이지아」의 극적 화해라는 점에서 경제적의의 못지않게 정치적의의가 붙여졌다. 아무튼 「인도네시아」의 우시회의 구체화로 평가되는 이번단교가 좌등일본수상의 「인도네시아」방문중에 있었다는 것은 그들나름의 일석이조의 속셈도 없진않았다는 뜻도된다.
지난10월1일의 반공학생들의 중공대사관습격사건이 직접도화선이된 이번사태로「인도네시아」의 경제권을 쥐고있는 화교는 이제 재기불능의 타격을 받을 것은 뻔하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