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베를린 영화제에 입성하면서 상황은 바뀌었다. 15년 간의 중일전쟁 동안 자신들이 저지른 만행에 대해 소름끼치는 증언을 해준 일본 퇴역 군인들의 용기를 목격한 많은 관객들은 마츠이의 노력에 찬사를 보냈다. 베를린 영화제에서 거둔 성공은 일본 언론의 관심을 끌었고 도쿄에 있는 한 소극장은 작년 12월 '일본의 악마들(Japanese Devils)'을 상영했다.
이 영화가 상영되는 3개월 내내 극장은 자신의 조부모 세대가 전쟁 중에 저지른 행위에 대해 거의 몰랐던 일본의 젊은이들로 가득찼다. 마츠이는 "관객 중에 젊은이들이 있는 것을 보게 돼 뿌듯하다. 전쟁의 진정한 본질과 함께 전쟁을 통해 평범한 사람이 나약하고 비정상적이며 끔찍한 사람으로 변모하는 과정을 담아내고 싶었다. 나는 침략자의 관점에서 역사를 기록하고 싶었다. 우리 일본인들은 전쟁에서 침략자였고 이 사실을 사람들, 특히 젊은 세대에 전달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모두 죽이고 불태우고 약탈하라."
퇴역 군인들은 카메라를 바라보면서 전후 세대의 눈에는 역겹기만한 전쟁 만행을 담담하게 자세히 설명한다. 마츠이는 "그들이 자신들의 어두운 과거를 매우 솔직하게 털어놓는 것을 보면 이들이 잘못을 속죄하지 않는 것처럼 보일지 모른다. 그러나 그런 생각은 전적으로 틀렸다"고 말했다.
"우리 인간들은 그런 끔찍한 짓에 익숙해질 수 있었다. 이 퇴역 군인들이 중국에서 만행을 저지른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다. 이들은 한 명, 또 한명, 다시 한 명…, 이런 식으로 사람들을 살상하면서 더 이상 죄책감을 느끼지 못하게 됐다. 우리의 정신은 이렇게 작동한다. 소름끼치는 일이다"
마츠이는 영화를 찍으면서 비슷한 심리 과정을 거쳤다고 말했다. 그는 첫 인터뷰 상대와 대화를 나누다가 한 가족 전체를 총살한 얘기를 들었을 때 등골이 서늘한 느낌을 받았다. 그러나 계속 영화를 찍으면서 그런 느낌은 가라앉았다. "그들은 양심의 가책을 느끼기 때문에 고백한 것이다. 그들은 이 다큐멘터리 영화가 진실을 기록하도록 하기 위해 촬영에 동의했다. 하지만 우리는 이들에게 감성적인 면을 기대해선 안된다. 50여 년 전에 일어났던 일에 대해 쉽게 울거나 목소리를 높일 수는 없다. 그런게 바로 우리 인간의 속성이다."
2001년 최고의 영화
마츠이는 이 영화를 다른 나라들에서 상업적으로 상영하거나 중국 본토에서 개봉할 계획은 없다고 밝혔다. "이 영화는 꼭 봐야 하는 영화다. 퇴역 군인들이 하는 말을 들어봐야 한다. 이 영화를 보면 중일전쟁 때 어떤 일들이 발생했는지 알게 될 것이다. 그리고 나서 내가 직접 영화가 주는 교훈에 대해 설명하기보다는 관객들 스스로가 이 영화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결정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