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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천절-단군신화를 정리해본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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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10월3일은 개천절. 금년으로 우리나라는 개국 4300년째다. 그러나 62년이래 모든 기록에서「서기」를 통용하는 동안 「단기」는 거의 잊혀졌고 단군에 대해 어디까지나 민족신화로서 취급한다는 문교부의 교육방침에 따라 개국시조에 대한 개념이 퍽 모호해졌다. 그렇다면 국경일 개천절의 존폐도 다시 생각해 봐야 하지 않을까. 없앨 이유가 분명치 않다면 「단군 시조」애 대한 국민의 인식은 보다 구체화할 필요가 있다.
4300년이란 숫자는 고려 충렬왕 때의 「삼국유사」에서 비롯된다. 단군 시조가 중국 요순과 같은 때 즉위했다. 그 요순의 즉위가 무진년이므로 4천3백년전에 해당한다.
학술상 따질 성질이 못되는 추정이다.
『역사의 소산임은 틀림없지만 정확한 것이 아니니까 오늘날엔 안 써도 그만이다.
단군은 한 특정인이 아니요 제정일치 시대의 우두머리의 통칭으로 봄이 옳다. 단지 이 신화는 원시국가시대의 사회현상을 반영해주는 점에서 다른 모든 신화와 더불어 중요하다』소장 사학자 이기백 교수의 말이다. 학문적인 면에서 단군 시조나 단기 몇 년 문제는 전혀 관심 밖이라고 덧붙인다.
사학계의 노대가 이병훈 박사는 『단군신화는 우리도 시조가 있다. 우리나라는 기원이 오래다는-자주정신에서 생긴 것』이라고 해석한다. 이 신화의 역사성을 찾아본다면 단군 조선 즉 「아사달」이란 도시국가가 분명히 있었다. 그 첫 아사달 사회는 평양이요 새 세력에 밀려 남쪽 안악에 제2 아사달 사회를 형성하는데 「단군」은 제정일치시대의 배영능자로써 제주이고,「주검」은 이미 제·정이 분리된 시대의 정치적 장을 뜻한다고 이 박사는 주장한다.
배달문화연구소 안호상 박사는『단군 시조에 대해 다소 과장된 표현이 있을지라도 그것은 신화가 아니라『신이설이었을 뿐이다』-맨 처음의 근본사상은 ①하늘숭배 ②사람사랑 ③조상공경에 있느니 만큼 이 민족의 얼을 찾는데는 전해오는 그대로를 받아들이는 것이 순수하다는 것이다.
단군신화를 가장 크게 치켜올린 이는 역시 고려조의 이승휴이다. 그는 「제왕운기」에서 한반도의 많은 부족 국가가 모두 단군의 후예라 했다. 온 국민의 결속이 극히 요청되는 때에 그 핵심으로서 이것을 내세웠던 것이다. 그후 이조 5백년의 사대사상과 일제의 침략사상에 부정 당해왔다. 그러나 일제하에서 대종교의 주신으로 모셔진 점이라든가, 금세기에 들어 단재·육당 등 여러 학자의 연구대상에 오른 점등 민족의 자유성이 고창될 때는 다시 그 핵심체로 추앙되곤 한다. 『이 신화는 북방문화의 영향 아래 형성된 것으로, 그 집단세력(단군 조선)이 패망한 후 고구려·신라 등이 예외 없이 각기의 시조신화를 가졌으므로 변방유민들 사이에 겨우 전승돼왔다. 그러나 저급한 신화에 속하는 인문신화로서 퍽 오랜 것으로 봐야겠다』는 것은 민속학자 장준근씨의 견해. 정신과의인 이병윤 교수는 『단군신화는 영웅 혹은 한민족 시단의 탄생을 기록한 것이며 동시에 부권사회가 형성됨을 보이는 기록이다. 시기적으로는 「토템」시대로부터 신의 설정과 조상숭배의 시기로 이행하는 시대의 소산물』이라고 하여 긍정적인 견해를 펴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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