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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일야방성대곡」-고 장지연 선생 묘비 제막에 붙여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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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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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으로부터 62년전-1905년 노서아와의 전쟁에서 승리를 거둔 일본이 그 여세를 몰아 군대의 힘으로 우리정부를 강압하여 소위 을사보호조약(을사보호조약)을 체결케 했던 그해11월20일, 당시의 황성신문(고성신문)에 「시일야방성대곡」이란 제목으로 사설을 쓰셨던 장지연 선생의 산소를 온 신문인의 이름으로 개수하고 묘비를 세워 제막하는 이날(2일)그때의「방성대곡」을 되새겨 봄은 또한 뜻깊은 일이 아닐까 한다.
그때 그날의 사설을 보면 『…나라를 지켜야하는 정치의 책임자들이 나라를 팔아먹고 동포의 산목숨을 남의 노예로 쳐 모니 이 무슨 개돼지만 같지 못한 것들이냐, 무슨 낮으로 이 국민 앞에 얼굴을 들고나설 수 있느냐』고 꾸짖고 나서 다시 『아 아프다, 아 분하다, 우리 2천만이 남의 노예가 되단 말이냐. 동포여, 살았는가 죽었는가, 단군이래 4천년의 국민정신이 하룻밤사이에 가분재기, 멸망하고 만단 말이냐. 아프고나 아프고나, 동포야 동포야.』하고 통곡의 결론을 지었다. 장지연 선생은 구한국 말년 무능하고 부패하여 사리사옥에만 눈이 어두웠던 당시의 권력층 밑에 나라의 운세가 날로 기울어져 감을 보고 민중계몽의 급선봉으로 나섰던 신문인의 한 분으로서 애국심에 불타는 지사일뿐더러 많 저서를 남긴 학자이었다.
그러면 지금 어떤가. 방성대곡하여야 할 날이 어찌 그때 그날뿐이랴.
오늘 이때는 어떤가.

<2>
통곡해야 할 날은 그후에도 그치지 않았다. 보호조약 후 다시 5년만에 나라는 완전히 왜적의 것으로 합방이 뒤고 말았을 때, 얼마나 많은 동포들이 피눈물을 뿌렸던가. 그후 10년에 민족정기를 드높여 맨주먹으로 왜적의 총칼에 대항하는 독립운동을 일으키고, 그 뒤에 계속되는 항쟁의 민족운동에 또 많은 피를 흘리고 통곡의 날을 보냈다. 해방의 날을 맞이했을 때만은 통곡 아닌 기쁨의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그려나 웬일일까. 국토가 남북으로 두 동강이가 나고 민족은 두 세계로 갈라져 형제도 이웃도 원수처럼 총부리를 맞대고 싸워야하는 비극을 누가 원했으랴. 우리는 목놓아 통곡하려 해도 가슴이 막혀 소리가 아니나올 지경이었다.
산하는 피에 물들었고 동리와 마을은 잿더미가 되고마니, 한 때 이 강산에는 굶주리고 헐벗은 동포들의 울음소리와 탄식이 그칠 줄을 몰랐다. 그래도 이민족의 산 기운은 결코 삭아버리지 않아 자유와 평화와 독립과 부강을 외치는 소리 그치지 않아 부정부패와 독재와 폭력에 항거하여 2백여의 청년학도들의 피의 제물을 바치는 4·19로써 소위 제2공화국의 이름을 내세우기도 했고, 그후 1년이 못 가서 5·16의 군사혁명을 보게되기도 했다. 해방 후 오늘까지 평탄치 않은 나날과 정변의 숨막히는 세월을 보낸 것이 민국정치 20년의 역사라고 하겠거늘, 우리는 무엇 때문에 또다시 부정부패가 성행하고 그 여세로 「타락된 부정선거」의 「유례없는 역사」를 저지르고, 국회가 제대로 서지 못하는 험한 소용돌이 속에 헤매어야 하는가. 정치의 책임자들은 지금 무엇을 하고있는가. 국민 앞에 얼굴을 들고나설 면목이 어디 있겠는가.
이제 우리는 또 한번 크게 아프고 분한 생각을 금치 못하는 것이다.

<3>
이제 당면하여 공화당과 그 정부가 책략중이라는 소위 「단독국회」의 운영이란 것은 단호히 저지되어야 한다. 부정선거에 대한, 법대로 한다는 처리는 국민의 울분을 어느 정도로 풀어줄 수 있을 만큼 법의 처리와 동시에 정치의 도의적 책임이 따라야 한다. 야당은 국민의 기대를 저버림 없이 개중의 파벌과 자리다툼을 일삼는 더러운 것들을 잘 다스려 명분을 세우고, 국회에 들어가되 일당백으로 싸워 나갈 수 있는 태세를 하루바삐 정돈하여야 할 것이다. 이는 야당을 위해서 뿐 아니고, 나라의 정치전반을 위해서 간절한 문제가 되는 것이다.
여당과 정부는 소위 일당국회가 어떤 결과로 나타날 것인가를 국민적 정지의 양심을 가지고 깊이 생각하여야 할 것이다. 또한 국민은 일단 야당의 편에서 여당과 그 정부를 감시하고 경계하고 또 견제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 민주입헌(입헌) 정치의 원리인 것이다. 그 때문에 국민의 기본권리의 보장과 입법·행정·사법의 권력의 분립이 걸대요건으로 되어있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 우리나라의 행정부와 입법부(국회)와의 관계는 어떤가. 만일 야당이 없다면 국회는 있으나마나가 될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행정부의 부패가 국회로 번져 이권놀음의 소문으로 추잡하다고 하거늘, 그나마 여당과 정부를 견제할 아무 것도 없이된다면 이는 헌법과대의(대의)정치는 그대로 없는 것과 마찬가지가 될 것 아닌가. 오늘이때 또한 크게 통곡하고 슬픈 날을 맞이하여야 한단 말인가. 【홍종인<마산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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