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지식] 통치자들이 소설을 가까이해야 할 이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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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각하, 문학을 읽으십시오
얀 마텔 지음
강주헌 옮김, 작가정신
600쪽, 1만5000원

막스 베버는 정치인의 덕목으로 열정과 책임감, 균형감각을 꼽았다. 하지만 베스트셀러 『파이 이야기』의 작가인 얀 마텔의 생각은 좀 다르다. 지도자의 필수 덕목으로 문학적 소양을 내세웠다.

 책은 마텔이 2007년부터 4년간 스티븐 하퍼 캐나다 총리에게 보낸 101통의 편지를 묶었다. 격주로 쓴 편지는 그가 정성을 다해 고른 문학작품과 함께 관저로 배달됐다. 총리의 의사와는 무관한, 일방통행식의 ‘외로운 북 클럽’이었다. (하퍼 총리는 단 한 번도 답장하지 않았다)

 그가 ‘문학 스토킹’을 시작한 것은 작가가 아닌 한 시민으로서 품은 문제의식 때문이다. “정치인이 꾸는 꿈이 나에게 악몽이 될 수 있는 만큼 그가 어떤 방향으로 무엇을 상상하는지 알아야 한다. 나를 통치하는 사람이 어떤 문학 작품을 읽었는지 알 권리가 내게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마텔은 말한다. “정치인은 세상이 돌아가는 이치를 이해하는 능력뿐만 아니라 세상이 어떤 모습으로 바뀌면 좋겠다고 꿈꾸는 능력까지 갖춰야 한다”고. 그런데 새 세상을 꿈꾸는 데 문학만한 것이 없으니 소설과 시를 읽으라는 주문이다.

 하퍼 총리를 설득하는 데 실패한 마텔은 그의 화살을 박근혜 대통령에게로 돌린다. 책 머리에 붙인, 박대통령에게 보낸 편지가 그것이다.

 “대통령님이 위대한 대통령의 반열에 올라서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조언하자면, 소설이나 시집 혹은 희곡을 항상 침대 옆 작은 탁자에 놓아두는 걸 잊지 마십시오. (중략) 현재의 순간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광적인 정치적 상황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대통령님이 진정으로 무엇을 하기 바라고 어느 방향으로 가야 하는지 냉철하게 판단하기 힘듭니다. 그렇기에 독서가 필요한 것입니다. 픽션을 읽으십시오.”

 그러면서 귀감 삼을 만한 통치자로 버락 오바마를 꼽았다. 문학애호가인 오바마 대통령이 펼치는 꿈의 폭과 깊이에 감동받았다면서. (자신의 책 『파이 이야기』를 읽고 친필 서한을 보낸 오바마에 대한 사감도 작용하지 않았을까)

 마텔의 편지는 지도자는 물론 일반 유권자에도 주는 충고다. 문학을 읽고, 성찰과 사색을 하고, 세상을 깊고 넓게 보라는 부탁으로 읽힌다.

하현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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