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서울 331곳, 불나도 소방차 못 가요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16면

서울 종로소방서는 최근 주차위반 경고 딱지를 자체 제작해 붙이고 있다. 초를 다투는 화재 현장에서 불법 주·정차된 차량 때문에 소방차가 발목을 잡힌 일이 한두 번이 아니기 때문이다. 종로소방서 관계자는 “강제로 범칙금을 부과하진 않지만 해당 차량 주인에게 경각심을 갖게 하자는 차원에서 내놓은 고육지책”이라고 말했다.

▷여기를 누르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지난달 18일 용산 보광동의 다세대주택 지역. 화재 신고를 받고 소방차가 출동했지만 협소한 도로 탓에 진입을 할 수 없었다. 대원들은 고육지책으로 소방차를 멀리 세워 두고 호스를 연장해 직접 화재 현장에 뛰어갔다. 대형사고로 번지진 않았지만 도로 사정만 좋았다면 3분이면 끝날 진화작업이 20분 이상 지체됐다. 용산소방서 관계자는 “화재가 커지거나 인명 피해가 발생할까 봐 호스를 연장하는 내내 식은땀이 흘렀다”고 했다.

 서울시 곳곳이 화재에 무방비로 노출돼 있다. 본지가 소방방재청과 새누리당 박덕흠 의원으로부터 입수한 ‘소방차 진입 불가 구간 현황 자료’에 따르면 서울시 주거·상가지역 등 331개 구간은 불이 나도 소방차가 진입할 수 없다. 구간 길이만 합쳐 모두 98㎞에 달한다. 이 중 85%(257곳)는 사람들이 다닥다닥 모여 사는 다세대주택촌 등 주거 밀집지역이어서 화재 진압이 늦어질 경우 대형 인명 피해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지역별로 따지면 용산구가 59곳으로 가장 많다. 종로구와 강북구가 각각 31곳으로 뒤를 이었다. 주요 원인으론 협소한 도로와 골목(용산구·59곳), 상습 불법 주·정차(강북구·21곳) 등이 꼽혔다. 특히 종로구의 경우 오래된 목조 건축물과 좁고 낡은 골목길이 많아 화재를 초기 진압하지 못할 경우 대형 화재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됐다. 실제 지난 2월 17일 발생한 종로구 인사동 음식점 화재사건의 경우 좁은 골목과 보행자 위주로 구성된 도로가 피해를 키웠다.

 대형 중앙분리대, 과도하게 높은 과속방지턱, 전신주 등 장애물로 인해 소방차 출동이 지연되는 사례도 있었다. 도로 구조상의 원인으로 소방차 출동이 장시간 지연되는 구간만 21곳에 달한다. 소방차의 도로 진입을 원활히 하기 위해 스타렉스·봉고 등을 개조해 만든 소형 소방차를 종로·광진·송파·동작소방서에 한 대씩 배치했지만 별다른 효과를 못 보고 있다. 물탱크 용량이 일반 소방차의 6분의 1 수준인 데다 1분당 살수량도 57L로 200분의 1 수준에 그쳐 화재 진압 능력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서울시 관계자는 “2014년까지 중앙분리대를 신축성 있는 분리봉 등으로 교체하고, 도로 정비계획을 새로 점검하는 등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말했다. 세명대 윤용균(소방방재학) 교수는 “소방차 진입 불가 지역엔 일단 소방 용수시설, 소화기구 등을 충분히 설치해 초기 화재 진압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 고 지적했다.

손국희·강나현 기자 <9key@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