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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 Report] 주식하기 겁이 나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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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주식에 대해 좋지 않은 기억과 거부감을 갖고 있다. 원자재든 주식이든 부동산이든 많이 오른 것을 뒤따라가는 ‘추격 투자’ 성향이 강하다. 그럼에도 앞으로의 투자 수익률에 대해서는 자신감이 넘친다.

 올해 한국 투자자들의 성향과 심리는 이렇다. 글로벌 자산운용사 프랭클린템플턴 인베스트먼트가 국내 투자자 25~65세 501명에게 설문한 ‘2013 글로벌 투자자 심리 연구’를 바탕으로 증권사 전문가들이 분석한 결과다. 프랭클린템플턴 인베스트먼트는 한국을 포함해 미국·일본 등 19개국 투자자 총 9518명을 조사했다.

코스피 올랐지만 내 주식은 떨어졌소

 한국인의 주식에 대한 관념은 독특했다. 지난해 코스피지수가 9.4% 올랐건만 37%는 ‘하락했다’고 답했다. ‘변화 없다’가 35%였고 ‘올랐다’는 28%뿐이었다. 지난해 미국 다우지수의 상승폭(7.3%)이 코스피지수만 못했는데도 미국 투자자들은 69%가 ‘올랐다’고 한 것과 대비된다.

 우리투자증권 임병용 프라이빗뱅킹(PB) 팀장은 “지난해 상승장에서 개인은 소외됐다는 점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주가지수는 올랐으나 개인들 상당수는 주식에서 재미를 보지 못했거나 손해를 입었기에 전반적으로 주식시장이 나빴다고 인식한다는 것이다. 사실 지난해 상승은 부동의 시가총액 1위 삼성전자가 이끌었다. 연초 100만원대에서 연말 150만원 선까지 치솟았다. 하지만 삼성전자는 워낙 비싸 개인들이 쉽게 투자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다. 과실은 대부분 기관과 외국인이 가져갔다.

 반면 개인들이 많이 투자하는 중소형주와 코스닥은 성적이 좋지 않았다. 지난해 주식 시황이 좋지 않았던 것처럼 개인들이 생각하는 이유다. 임 팀장은 이에 더해 “손해 본 경험이 더 강하게 각인되는 효과도 작용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일본도 사정이 비슷했다. 지난해 도쿄 주식시장의 닛케이지수가 27% 상승했는데도 ‘올랐다’고 답한 일본 투자자는 17%뿐이었다. 지난해 하반기 상승장에 뛰어들어 이익을 본 것이 기관과 외국인들이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주식에 대한 안 좋은 추억이 쌓여 일종의 트라우마가 형성된 것일까. 국내 투자자들은 올해 주식이 오를 것이라고들 했다. 그러면서도 주식투자를 비관적으로 보는 의견이 약간 우세했다. 올해 투자는 전보다 더 보수적으로 하겠다고 했다.

 전체의 50%는 올해 주식 강세를 점쳤다. ‘그저 그럴 것’이 29%, 약세는 21%였다. 응답을 받아낸 시점은 올해 1월 14~25일. 엔저 효과와 북한의 위협이 강하게 대두되기 전이다. 한국투자증권 박소연 연구위원은 “주식 강세 전망에는 새 정부 출범에 대한 기대감이 작용했다”고 진단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후보 시절이던 지난해 12월 18일 한국거래소를 방문해 “5년 내에 코스피 3000 시대를 꼭 열겠다”고 말한 바 있다. 주식투자에 대해서는 ‘비관적’이 52%, ‘낙관적’이 48%였다. 주식시장이 좋아도 개인들이 돈 벌 가능성은 그다지 높지 않다고 생각한다는 의미다.

은행 예금에 넣는 게 더 낫겠소

 올해 투자전략은 ‘전보다 더 보수적으로 바꾸겠다’가 66%였다. 주식보다 채권이나 은행 예금에 많이 투자하겠다는 소리다. 박 연구위원은 “설문 당시의 여건에 영향을 받았다”고 말했다. 올 초는 미국 정부가 예산 자동삭감에 들어간다는 ‘시퀘스터’ 논란으로 시끌시끌하던 때다. 유럽 위기설 또한 계속 불거졌다. 투자자를 보다 보수적으로 만들 수밖에 없는 여건이다. 보수적 투자 선호는 전 세계가 공통이었다. 57%가 ‘올해 보수적으로 전략을 바꾸겠다’고 했다.

원자재·귀금속이 유망해 보이오

 올해 가장 유망한 투자 대상으로는 원자재를 꼽았다. ‘귀금속’(25%)과 원유 같은 ‘비금속 원자재’(25%)가 공동 1위였다. 다음은 ‘주식’(19%)과 ‘은행 예금’(9%) 순이었다. ‘부동산’은 5%뿐이었다. ‘향후 10년간 유망 투자 대상’ 또한 비슷했다. ‘비금속 원자재’(33%)와 ‘귀금속’(21%)이라는 답이 많았다.

 삼성증권 투자전략센터 오현석 이사는 “관성·추격 투자라는 한국 개인들의 특성이 그대로 드러난 응답”이라고 했다. 한참 오른 자산에 ‘더 오를 것’이라고 투자하고, 값이 많이 떨어진 자산은 더 떨어질 것이라는 공포감에 팔아 치우는 게 개인투자자들의 공통 속성이다. 그래서 10년 가까이 상승 랠리를 펼쳐 온 원자재를 최고 투자처로 여긴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이는 전문가들의 견해와 사뭇 다르다. 이미 지난해 말부터 글로벌 투자 관련 기관들은 “원자재 값이 상승을 이어가는 ‘수퍼 사이클(super cycle)’이 끝났다”고 경고했다. 실제 금값은 이달 들어 폭락했다. 오 이사는 “관성 투자는 개인이 고쳐야 할 가장 위험한 성향”이라고 조언했다. 관성 투자 때문에 생기는 대표적인 경우가 거품이 낀 자산을 사들여 큰 손해를 보는 것이다. 또 값이 바닥일 때 처분함으로써 나중에 반등해 이익을 볼 기회를 놓치게 된다.

 외국인들의 답은 한국과 달랐다. ‘부동산’이 22%로 최다였고, 다음이 ‘주식’(19%)과 ‘귀금속’(19%)이었다. 글로벌 경기 회복에 따라 부동산과 주가가 뛸 것이란 예상이 배어 있다.

올해부턴 버핏처럼 벌 것 같소

 한국인들은 자신의 투자 실력에 대해 자신감이 넘쳤다. 갈수록 수익을 더 많이 낼 것이라고 했다. 2012년에 애초 기대했던 수익률은 6.1%였는데 올해는 10.1%였다. 향후 10년간은 연평균 17.1% 수익을 낼 것이라고 했다. ‘앞으로 더 수익률이 높아질 것’으로 내다본 건 전 세계가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한국이 유달리 수치가 높은 편이었다. 10년 평균 수익률 예상치가 세계 평균(13.5%)을 3.6%포인트 웃돌았다. 대체로 신흥국들의 기대치가 높았고, 선진국은 낮았다. 브라질 투자자들이 예상하는 향후 10년간 연평균 수익률은 21.3%였다. 미국·일본은 11%대, 유럽은 한 자릿수였다.

 전문가들은 한국인들이 답한 17.1%에 대해 “투자의 귀재 워런 버핏 버크셔해서웨이 회장이나 가능한 얘기”라고 말한다. 연 평균 17.1% 수익을 10년간 복리로 쌓아가면 원금이 5배로 불어난다.

 신한금융투자 도곡 PWM센터 이영주 부지점장은 “이렇게 많은 수익을 낼 수 있다고 생각하면 은퇴 후 등에 대비해 충분히 투자를 하지 않는 문제가 생긴다”고 지적했다. 한 자릿수 수익을 예상하고 매달 100만원의 투자를 해야 할 텐데, 17.1%를 낼 수 있다고 판단해 50만원만 투자했다가 노후에 자금 부족을 겪을 수 있다는 얘기다. 이 부지점장은 “정기예금 이자율에 물가상승률 정도를 더한 6~7%를 연간 수익 목표로 잡는 게 현실적”이라고 말했다.

권혁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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