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7회 삼성화재배 월드바둑마스터스] 고수의 승부 호흡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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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준결승 1국>
○ .·박정환 9단 ●.·구리 9단

제8보(81~94)=혼돈의 바둑판에 천둥 번개가 내리치고 있습니다. 겉모습은 그렇습니다만 혼돈 속에서 질서를 찾아가는 과정이죠. 수순은 거의 외길입니다. 흑이 81로 나가면 백도 82 나갑니다. 생사가 코앞에 닥쳐 있기에 출구를 향해 전력으로 달리는 형국입니다. 83, 84도 마찬가지고요, 84가 놓이면 85의 수비 또한 절대입니다.

 수순은 계속해서 생각할 틈을 주지 않고 있습니다. 86으로 흑A를 방비한 것도 당연한 수순이며 흑도 87 살려놓고 89로 달아납니다. 여기까지 정말 숨가쁘게 달려왔군요. 바둑은 상당히 정리됐습니다. 하변 흑은 안정권에 접어들었고 중앙의 흑과 백은 쌍방 미생인 상태에서 숨을 고르며 대치하고 있습니다. 우하귀가 여전히 남은 숙제로군요. 이곳을 누가 먼저 가느냐.

 90은 ‘참고도1’ 백1의 회돌이 축을 노리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91로 방비해야 하고 91이 오면 92도 반드시 필요한 수비입니다. 91로 석 점을 살리느니 귀부터 살리고 싶다고요? 아닙니다. 귀는 훨씬 커 보이지만 백이 먼저 둬도 한 수에 해결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중앙 석 점이 잡힌다면 백은 사통오달이 되면서 모든 근심에서 벗어나게 됩니다.

 93으로 벗어날 때 드디어 94가 떨어졌습니다. ‘참고도2’는 쉬운 길이지만 백 대마도 미생이라 앞길은 되레 어둡군요. 박정환 9단은 94를 결행해 한발 빨리 변화를 도모하고 나섰습니다. 이게 바로 고수의 승부 호흡이지요. 

박치문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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