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보기] DJ, 盧 그리고 문희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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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선거를 20일 앞둔 그날. 문희상은 어머니를 여의었다. 5년째 치매를 앓던 어머니였다. 마지막엔 아들 얼굴도 못 알아봤다. 그럼에도 숨지기 하루 전까지 어린애처럼 '노무현'을 연호했다.

문희상의 아버지는 11년 전 사망했다. 문희상이 국회의원에 당선되는 그날 뇌일혈로 쓰러졌다. 끝내 의식을 회복하지 못하고 사망했다.

숨을 거두기 이틀 전 문희상은 의원 배지를 아버지 눈앞에 갖다 댔다. 그러자 아무 말도 못하는 아버지의 두 눈엔 눈물이 흘렀고 이내 감아버린 눈은 다시 뜨지 못했다.

*** 盧후보 지킨 뚝심의 문희상

그로부터 5년 뒤. 문희상은 아버지 산소로 달려갔다. DJ가 대통령에 당선된 그날이었다. 산소 앞에 엎드린 그는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아버지, 내 말이 맞았죠?"

DJ가 대통령이 될 거라 장담했던 그였다. 절대로 안된다던 그의 아버지였다. 한참을 울부짖던 그는 이렇게 다짐했다.

"저는 오늘로 모든 꿈을 이뤘고 이제 모든 꿈을 접습니다."

그는 두번의 선거에서 아버지와 어머니를 잃었다. 평생의 정치에서 전재산을 날렸다. 의정부 최고의 부자가 지금은 빈털터리다. 그를 통해 정치의 허무함을 본다.

그러나 그를 통해 정치의 생명력도 본다. 누가 봐도 DJ사람인 그다. 그러나 그는 차기 정부 대통령비서실장이다. 요직 중 요직을 차지했다. 남다른 경쟁력 때문이다.

그를 표현하는 말이 있다. 장비의 힘과 조조의 머리를 가진 인물. 그가 경복고를 다닐 때였다. 힘이 장사인 그는 공부도 우등이었다. 그는 학교내 10여개 불량 서클을 정리했다.

불량 서클과 규율부 학생 반반씩으로 구교대(救校隊)를 결성했다. 그날 이후 시끄럽던 학교에 평화가 찾아왔다. 힘만으로도, 머리만으로도 할 수 없는 일을 해냈다.

매사 그런 식이다. 지난해 모두가 노무현에게서 등을 돌릴 때였다. 그러나 그는 달랐다. 노무현을 지킨 건 장비의 의리였다. 반대세력의 이탈을 막은 건 조조의 머리였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대북 4천억 지원문제 해결은 그가 먼저 촉구했다. 현정권이 진실을 밝히라고 했다. 마치 DJ의 목을 죄는 듯했다. 장비의 힘이었다. 노무현을 살리기 위해서였다.

그 결과 진실의 일단이 드러났다. 그러자 그는 이쯤에서 덮자고 한다. 대북지원은 통치행위였단 논리다. 그러니 사법적 판단 대상이 아니란 주장이다. DJ를 살리려는 것이다.

그래야 노무현도 산다고 보는 거다. 양쪽의 조율도 마쳤다 했다. 다만 그렇노라 밝힐 수 없다는 것이다. 조조의 머리다.

*** '4천억 의혹'해법 양쪽 조율

문희상. 그는 꿈을 접었다고 했다. 아버지 산소 앞에서의 다짐이었다. 그러나 그는 또다른 꿈을 펼쳤다. 그리고 그 꿈을 이뤘다. 어찌보면 스스로의 다짐을 저버렸다.

그러나 그는 이렇게 주장한다. 꿈을 접었기에 덤으로 얻었다 했다. 그에게 노무현은 꿈이 아니었다. 그저 눈앞의 현실이었다. 그래서 충실했고 그래서 지켰다는 것이다. 그것이 꾸지 않은 꿈을 현실로 만들었다는 얘기다. 문제는 앞으로다.

그에게 앞으로는 정말이지 덤이다. 이미 모든 걸 쏟았고 그 이상을 얻었기 때문이다. 덤의 요체는 무욕(無慾)이다. 무욕의 공간엔 대의(大義)만이 자리한다. 꿈은 접을수록 펼쳐진다. 그게 덤의 원리다.

이연홍 정치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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