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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론

기업도 원자력 협상 도와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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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김경민
한양대 교수·정치외교학

한·미 원자력협정 협상이 2 년 연장에 들어갔다. 핵 비확산만을 고집하는 미국의 입장과 23기의 원자로를 가동하는 한국의 현실에 맞게 사용후 핵연료를 활용하는 것과 발전용인 저농축 우라늄의 안정적 공급을 보장하라는 주장이 맞서고 있다. 그래서 고육지책으로 2년 연장 결정을 한 것이다. 연장은 잘한 일인가? 한국이 요구하는 것을 관찰시키지 못한다면 연장은 잘한 것이다. 그러나 2년 연장의 기간 동안 지금까지와 같이 협상하면 시간만 끌 뿐이지 우리의 요구를 받아내지 못할 것이다.

 한·미 양국은 2010년 10월 1차 협상을 시작해 2012년 2월 5차 협상까지 2~5개월 간격으로 격렬한 협상을 진행해왔으나 2012년 두 나라가 대선 정국에 들어가면서 이번 6 차 협상은 1 년2개월 만에 열린 것이다. 협상이 잘될 리 없었다. 그래서 이제는 3 개월마다 정례적으로 한·미 원자력협정 개정 문제를 논의할 범정부적인 태스크포스를 발족시킨다고 한다.

 미국은 다양한 이익집단이 정책 결정 과정에 관여하는 정치문화를 갖고 있는 나라다. 미국 정치를 이해하지 못해서는 소기의 목적을 달성할 수 없다. 그래서 글로벌 네트워크를 갖고 있는 한국의 재계가 원자력협정의 개정에 힘을 보태야 한다. 일본과 인도가 미국과의 원자력협상에서 여타의 나라들과는 다른 대접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은 일본과 인도의 산업계가 조직적으로 지원에 나섰기 때문이었다. 1987년 미·일 원자력협정 개정 당시 일본은 ‘일본원자력산업회의’를 중심으로 9개 전력기업과 미쓰비시·도시바·히타치 등 원자력 제조기업이 긴밀한 협조 체제를 구축했다. 미국 로펌을 고용해 활동하는가 하면 제너럴일렉트릭·웨스팅하우스 등 미국 내 파트너 기업과 미국원자력협의회·에디슨전기협회·미국에너지협의회 등 산업계 단체들로 하여금 적극적인 지지 및 지원 활동을 하도록 했다.

 2008년 미·인도 원자력협정 개정 때 인도 원자력공사 및 라슨엔투브로와 같은 대기업들이 웨스팅하우스·제너럴일렉트릭과 원전 건설 협력 MOU를 체결하고 미 의원 초청행사를 활발히 추진했다. 인도비즈니스카운슬은 미국의 로펌을 고용해 적극적인 로비 공세를 펼쳤다.

 한국도 원자로 수출국가이기 때문에 미국에 같이 먹고살자는 ‘상생의 한·미 원자력’이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걸고 미국 산업계를 움직여나가면 협상에 승산이 있을 것으로 판단된다. 원자력협정 개정의 태스크포스에도 산업계뿐만 아니라 연구단체와 학계도 함께 참여해 미국의 정책 결정에 영향을 줄 수 있는 각계각층을 만나 설득에 나서야 한다. 2 년이 긴 시간 같지만 충분한 시간이 아니다. 88년 미·일 원자력협정 개정을 성사시켰던 일본 외무성 담당관은 나카소네 야스히로 전 총리의 공이 컸다고 회고한다. 최종적으로는 나카소네와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의 작품이라는 것이다.

 다행히 한국의 박근혜 대통령은 미국의 고위 인사를 만날 때마다 “한국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을 도와달라”고 요청하고 있다. 역대 어느 대통령도 그렇게 못했다. 원자력협정이 원만하게 개정되려면 최고 지도자가 관심을 갖고 리더십을 발휘하고 하부조직도 적극적으로 움직여야 한다. 그래야 미국이라는 상대를 설득시킬 수 있는 것이다. 한·미 원자력협정에서 저농축 우라늄의 안정적 공급 확보와 사용후 핵연료 재활용 문제를 매듭지어야 원자로를 수출할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된다. 한국 원자로의 수출 대상국 후보가 사우디아라비아·핀란드·베트남으로 떠오르고 있다는 사실을 염두에 둬야 한다. 원자력 플랜트 사업은 한국 경제의 먹거리 산업이 되고 있다. 원자력 협상에서 기업의 역할은 매우 중요하다.

김경민 한양대 교수·정치외교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