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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VD리뷰] 아오야마 신지감독의 '유레카'

중앙일보

입력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뜨거운 어느 여름, 두 남매가 버스를 탄다. 뒤 이은 정류장에서 평범한 샐러리맨을 포함한 몇명의 승객들이 동승한다. 하지만 바로 다음 장면서 카메라는 피묻은 시체의 손을 보여주며 버스 인질극을 생중계한다. 경찰들은 버스를 애워싸고 승객들을 구하려 하지만 결국 범인을 포함한 여섯명의 사람들이 죽게된다. 생존자는 두남매와 버스운전수. 두남매는 사건이후 실어증에 걸리고 (이들의 실어증은 아버지의 죽음이후에 온 것이 아니다. 어머니의 가출시에도 이들은 대화하지만 입의 움직임은 없었다.) 버스운전사 사와이 마코토는 아내와 가족을 남겨두고 가출한다.

일반영화의 2배가량의 러닝타임인 3시간 37분의 길이에, 앤딩부분의 컬러부분을 제외하면 그의 후속작의 제목 '사막의 달'을 연상시키는 사막의 모래색깔을 띄는 흑백영화 '유레카'에서 아오야마 신지는 각본과 음악까지 담당하며 2000년 칸영화제서 국제영화 비평가 연맹상을 수상하고 그야말로 칸이 새롭게 발견한 (Eureka !) 감독이자 영화가 되었다.

영화 '유레카'를 이야기함에 있어 그의 극장장편 데뷔작인 '헬프리스: HELPLESS'를 빼놓을 수 없다. 그것은 '유레카'에서 나오키와 코즈에 남매 (이들은 실제 남매지간이기도 하다.)의 사촌으로 등장하는 아키히코가 바로 '헬프리스'에서 켄지 (아사오 다타노부)의 친구로 등장하던 바로 그 캐릭터 이기 때문이다.

아키히코는 아코토에게 자신이 4년전 친구의 친구인 야쿠자에게 총으로 죽을뻔 했던 기억을 이야기한다. (자신의 눈앞에 두구의 시체가 있었으며 친구의 덕택으로 살아났고 또, 자신을 죽이려 한 야쿠자가 자살하였다는 이야기와 그가 폴라로이드 사진을 즐겨찍었다는 점은 아키히코의 이야기 및 특정행동과 일치하며, 무엇보다도 '유레카'가 2000년도 작품이라면 '헬프리스'는 감독의 1996년 작품이었음을 상기시켜 보자.)

'헬프리스'의 야쿠자, 야스오는 자신의 감정을 주체치 못하고 사람들을 죽이고선 (경찰관도 포함하여) 자살한다. 이러한 그의 행동은 어떠한 이유도 밝히지 않고 승객들을 하나씩 죽여간 버스인질범의 행동과 유사하다. 95년 옴진리교에 의한 지하철 사린가스 살포사건에서 충격받아 영화 '유레카'를 제작하게 되었다는 제작배경을 알게 된다면 오프닝설정에 대한 감독의 의도는 어느 정도 이해된다.

생존에 대한 죄책감과 충격으로 가출한 마코토는 2년 뒤 귀가 하지만, 아내는 이미 가출하였으며 마을은 또다른 공포에 휩싸여 있다.

젊은여인 연쇄살인사건으로 친형에게마저 의심을 받게 된 마코토는 부모없이 집에만 2년동안 있었던 또다른 생존자들인 두남매와 함께 살 것을 제안하고 이들과 유사가족의 형태로 생활한다. 그리고 여기에 두남매의 사촌인 아키히코가 개입된다.

영화 유레카는 대화에 관한 영화다. 영화시작과 함께 두남매가 탔던, 그리고 마코토가 운전했던 그 버스의 생존자는 단 3명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버스인질범의 마지막 총구는 바로 관객들을 향하고 있었고 영화를 보고있던 관객들 역시 그 사건의 생존자였던 것이다. (카메라는 관객들이 마치 버스안에 있는 것처럼 착각하게 만든다.)

반대로 버스인질범의 신원은 밝혀지지 않지만 그의 모습은 영화를 보는 일반관객들의 모습과 그리 다르지 않다. 그리고 영화는 관객들과 대화를 시도한다. 감옥에 잠시 갇혀있었던 마코토는 벽을 두들겨 사람과 대화하는 방법을 배운다. 그는 같은 방법으로 나오키와 코즈에 남매와 대화를 시도한다. 두남매는 실어증에 걸렸지만 서로간에는 대화가 가능하다. 남매들에겐 대화뿐 아니라 서로의 눈을 통한 시선의 공유역시 가능하다. 두남매는 이러한 의미에서 별도의 개체이면서 또한 하나의 개체인 진화한 형태의 인간으로도 볼 수 있다.

2년 뒤 다시금 마코토가 버스를 타고서 아이들과 함께 길을 떠날 때, 관객들은 또다시 이 버스에 말없이 동승하게 된다. 죽음에 대한 기억을 가지고 있는 이들 4명은 살인에 대한 충동을 지니고 있었다. (그것은 관객들도 같은 충동을 지니고 있음을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지만 현실에서 충격적인 사건들을 경험한 일본의 관객들을, 더 나아가 영화를 보는 모든 관객들에게 일종의 메시지를 주려고 한다.) 모두들 살인에의 충동에 저항하고 있었지만 나오키는 그러지 못하였음이 밝혀진다.

바다에 도착한 코즈에는 자신의 시선으로 나오키와 관객들에게 바다를 보여준다. 바닷가서 줏어온 조개들에게 하나씩 아주 나즈막한 목소리로 이름을 붙이는 코즈에 (그녀는 이때부터 작으나마 목소리를 되찾는다). 조개들의 이름은 아빠, 엄마, 버스인질범 (버스인질범이 세번째!), 오빠, 아키히코, 사와이 마코토, 그리고 자신의 이름 순서로...

바다에서 산으로 장소를 옮긴 코즈에는 큰소리로 7개의 조개들을 호명하며 저 멀리 던져버린다. 집으로 돌아가자는 마코토의 말과 함께 영화는 컬러로 변한다. 마치 이전까지 기분나쁜 백일몽을 꾼 것처럼.

미안하다와 고맙다라는 말외엔 별다른 대화가 없는 마코토이지만 그의 접근방식은은 두남매를 따르게 하고 나오키의 살인충동을 잠재운다. 두남매를 하나의 인간으로 본다면 결국 마코토는 한인간에 내재된 살인충동을 떼어내서 일정기간 우리에게 접근치 못하게 하였다. 하지만 그는 그러한 어긋난 인간본성에게조차 이해심을 발휘하고 그 인성의 소유자에게도 나중에 다시 만날 것을 부탁한다, 죽지말라는 말과 함께.

시선과 대화를 공유하는 코즈에는 오빠가 범인이었음을 분명히 알고 있었다. 그녀가 자신을 죽일 뻔한 버스인질범에게까지 자신의 세계로 포용하는 순간, 그녀는 목소리를 완전히 찾게되며 마코토에게도, 관객들에게도 올바른 시각을 (컬러로) 갖게 만든다. 커뮤니케이션의 방법은 점점 발달하지만 진정 중요한 것은 마음이 담긴 대화이다 (버스인질범이 경찰과 대화를 시도했던 핸드폰은 통신두절 되기도 하였다.) 마코토가 시도한 벽 두들기는 상대방에 대한 완전한 관심없이는, 즉 귀를 기울이지 않코선 들을 수 없다. 대화는 상대방에 대한 배려가 포함되지 않으면 공허해진다.

자신의 사건현장가기를 거부한 아키히코는 유레카를 경험하지 못한다. 3시간 37분동안 이 영화를 경험한 관객들은 관람후 유레카!라고 외칠수 있을까? 집단치유능력이 있는 이 영화는 현재 국내수입이 되어있는 상태이나 아직도 개봉되지는 못하고 있다.

한가지 꺼림칙한 부분은 '유레카'의 산천을 보여주는 앤딩장면이 '헬프리스'의 오프닝화면과 무척이나 닮아있다는 점이다. 현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또다시 반복될 수밖에 없음을 감독은 계산에 넣은 것일까? 하지만 마코토와 코즈에가 주고받는 미소는 그 순환의 연결고리를 끊어 버리고 있다.

■ DVD구성 - 러닝타임: 217분 (흑백, 부분 컬러) - 화 면 비: 2.35:1 - 지역코드: 2 - 사 운 드: DD2.0 (일본어) - 자 막: 영어 및 불어 지원 - 서 플: 칸영화제 시사회/국제비평가 연맹상 수상장면, 일본국내 시사회장면, 극장예고편등

조성효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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