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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예산안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규모의 팽창」
68연도 예산규모가 정부·여당의 절충 과정을 거쳐 우선 2천1백91억 원 수준으로 합의되었다 하며 오늘 있을 청와대회의의 최종조정을 거쳐 확정될 것이라고 한다.
지난 64년도의 결산「베이스」재정규모가 7백5억 원 이었던데 견주어 본다면 불과 4년간에 재정규모는 실로 근 3배나 늘게 되었다. 경제를 계획적으로 개발하려 하기 때문에 재정규모가 팽창되는 것은 불가피하다는 점까지는 이해할 수 있으나 지난날의 재정팽창이 경제개발을 위해서 필요 불가결했던 것이냐 하면 반드시 그랬다고만 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외견상으로는 경제개발을 위해서 예산규모가 팽창되지 않을 수 없다는 명분을 내세우고 있지만 세출구조면에서 본다면 팽창된 세입의 대부분이 소비성지출에 충당되고 있는 실정이다.
68연도 예산규모가 64년 결산규모에 비해서 실로 1천4백33억 원이나 늘고 있는데 같은 기간에 재정투융자규모는 1백66억 원에서 5백27억 원으로 불과 3백61억 원 밖에 늘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한계투융자비율은 25%밖에 되지 않는 것이다. 더욱이 64연도 재정투융자는 63년 보다 오히려 줄었던 것이므로 실질적으로 본다면 한계투융자비율은 25%이하가 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와 같이 본다면 세금을 더 거두어서 정부가 한 일은 투융자를 확대시켜 자기보다도 오히려 소비를 확대시켜가고 있다는 허물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68연도 예산규모도 이러한 타성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총 규모는 67연도보다 5백48억 원이 증가하고 있는데 그중 70%이상이 소비지출증대에 충당되고 있으며 나머지 1백57억 원만이 재정투융자에 돌려지고 있는 것이다.
이것을 본다면 지난날 높은 성장률을 이룩할 수 있었던 것이 재정투융자의 확대에 있었다기보다는 차관을 중심으로 하는 민간투자의 확대에 있었다는 것이 보다 공정한 평가일 것이다. 따라서 정부는 경제성장의 이득을 소비하는 쪽으로 기울었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 동안 정부소비의 증가율이 지나치게 높았었다는 사실에 대해서 정책당국자는 반성하는바가 있어야 할 것이다. 많은 정부기관을 확충하여 인적 물적 낭비를 일삼아 왔으며 실질적으로 허울 좋은 간판만 붙여 놓고 할 일 없이 세월을 보내는 기관이 없는지 냉철한 자기진단이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예산안과 종합정책」>
소비성지출의 팽창을 위한 예산규모의 팽창이 개발예산의 본질과 어긋난다는 점은 너무나 분명한 것이나 이에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은 정책구현수단으로서 예산이 편성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그 동안 고금리제도, 외자도입과 통화팽창, 자유화정책, 농공병진정책, 산업합리화와 국제경쟁력강화, 세제개혁, 농산물가격안정정책, 공공요금현실화정책 등 체질개선을 목표로 하는 일련의 정책전환이 급속히 추진되어 왔으며 이와 아울러 제2차 5개년계획의 3년 반 단축이 강행되고 있다.
이러한 일련의 정책전환에 따른 문제점들을 유기적으로 묶어서 종합정책으로서의 통일성과 제합성을 갖추도록 한 연후에 이를 실현시키는 정책수단으로 그것이 예산에 반영되도록 하는 것이 순리라 하겠다. 그러나 이러한 정책적인 조정을 뒤로 밀고 우선 예산부터 짜다는 것은 불합리한 선택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기본정책이 혼란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예산부터 짠다면 필연적으로 추경예산이 반복적으로 제출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며 추경예산을 자꾸 짠다는 것은 가장 타기해야 할 예산상의 추태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보도에 따르면 67연도 국고채무부담행위에 따른 예산수요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68년도 본예산에 반영하지 않고 추경예산에서 해결하려 하는 모양이지만 그러한 방식의 예산편성은 성실한 것이 못되는 것이다. 지금 알 수 있는 예산상의 모순을 덮어 둔 채 예산을 짠다는 것은 재정상의 결함을 호도할 뿐 사태를 근본적으로 해소시킬 수는 없을 것이다.
또한 농산물가격안정기본법을 제정해 놓고 이를 실행하지 않는 것이라든지 외환 부문에서 팽창되는 통화를 재정부문에서 어떻게 해소시킬 것인가 하는 문제 등에 대해서 계속 외면한 채로 재정수지만을 맞추었다고 균형예산이다, 또는 건전예산이다, 할 수 있을 것인지 의문이다. 추곡의 정부매상을 대폭 호가대할 때 양특에서 파생되는 통화는 어떻게 수습하겠으며 세제개혁과 공공요금 인상에서 오는 재정압박과 「네거」제 및 국제경쟁방향 상 정책사이의 모순은 어떻게 해소시켜 갈 것인가 하는 점도 분명하지 못한 것이다.
예산규모를 사상 최대규모로 늘리면서도 이 나라 경제가 당면한 제 문제를 어떻게 해소시켜 갈 것인가하는 방향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음을 우리는 유감스럽게 생각한다.

<「정부와 민간」>
예산규모가 크게 팽창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개발을 위한 팽창이 아니라는 점과, 그리고 당면한 이 나라 경제의 제반 애로점들을 어떻게 해소시켜 줄 것인가를 제시하지 못하고 있는 것도 무리가 아닐 것이다. 이 나라 경제의 기본질서가 자유경쟁체제이기 때문이다. 제아무리 재정이 팽창해도 정부가 모든 경제활동을 직접적으로 지배할 수는 없다. 어디까지나 민간부문의 순조로운 지원자로서의 역할이상을 기대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러나 그 동안의 정책은 이러한 기본원칙을 외면하려했기 때문에 예산팽창만을 조장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제기되는 모순을 정부만이 해결할 수 있다는 착각의 시정이 무엇보다도 시급할 것 같다. 투자율이 낮으니까 세금을 더 거둬서 이를 증대시켜야 하겠다든지, 특정산업이 성장하지 못하니까 이를 지원해야겠다든지, 수출증대가 절실하니까 각종특혜를 주어야 하겠다든지 하는 등등으로, 생각나는 것은 무엇이나 재정지원과 행정강화로 해결하겠다고 한다면 재정이 이상팽창 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그러나 자유경쟁사회에서 그러한 현상추적으로 경제의 합리적이고도 순조로운 성장을 이룩하기 어렵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공리이다. 눈앞에 보이는 모순만을 쫓다보면 작은 모순이 큰 모순으로 확대되기 때문에 교란작용을 유발하게 마련인 것이다.
오히려 기본질서가 경쟁을 밑바탕으로 하는 한 소비적 재정팽창보다는 민간부문을 유도해서 고도성장을 이룩한다는 원칙을 재확인해야 할 것이며 재정정책의 실패로 오늘날 독일경제가 후퇴하고 있다는 사실도 반드시 남의 일만은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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