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추락하는 한국 경제엔 날개가 없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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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올해 우리나라의 경제성장 전망이 갈수록 어두워지고 있다. 아시아개발은행(ADB)은 최근 한국의 올해 성장률 전망치를 지난해 10월의 3.4%에서 2.8%로 대폭 낮췄다. 이는 일본을 제외한 아시아 국내총생산(GDP) 상위 11개국 가운데 꼴찌에서 둘째다. 올해 아시아 경제권의 평균 성장률은 6.6%에 이른다. 아시아권에서 성장률이 우리나라보다 낮은 나라는 싱가포르(2.6%)뿐으로 지난해 1인당 GDP가 5만1162달러로 우리나라(2만3113달러)의 두 배가 넘는 사실상의 선진국이다. 한때 성장신화의 주역이었던 한국이 1인당 소득 2만 달러의 문턱을 넘자마자 아시아의 열등생으로 전락할 위기에 처한 것이다.

 국제적인 회계·컨설팅회사인 언스트앤영(E&Y)은 올해 우리나라의 성장률 전망치를 지난 1월 발표한 3.3%에서 2.2%로 석 달 만에 무려 1.1%포인트나 낮췄다. 정부가 지난달 세수 부족을 보전하기 위한 추가경정예산의 필요성을 강조하면서 내놓은 2.3%보다도 낮은 수치다. 새 정부 출범 이후 한국 경제가 급전직하(急轉直下)로 추락할지 모른다는 경고다.

 경제상황이 이처럼 급박하게 어려워지고 있는데도 정부는 이렇다 할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추경예산안을 제시했으나 세수 확보 차원의 뜨뜻미지근한 조치에 불과하고, 부동산 대책도 싸늘하게 식어버린 주택경기를 되살리기엔 역부족이다. 엔저 공습에 수출은 위축되고, 소비와 투자는 정체와 퇴보를 거듭하고 있다. 이처럼 수출과 내수가 한꺼번에 부진하면 성장이 멈추고 일자리가 부족해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이 와중에 한국은행은 정부의 경기대책에 어깃장을 놓고, 정치권은 기업의 투자를 위축시키는 온갖 경제민주화 입법에 열을 올린다. 정부 스스로도 세무조사 강화와 새로운 규제 확대로 기업을 압박하면서 동시에 투자와 고용을 늘리라고 윽박지른다. 이러고도 경제가 살아난다면 그야말로 기적이 아닐 수 없다. 경제여건의 악화와 정부의 무대책이 겹치면서 한국 경제는 이제 특유의 도전정신과 활력마저 잃고 있다. 경제상황이 악화되는 것은 물론 ‘다시 해보자’는 패기와 의욕마저 사그라지고 있는 것이다. 이런 식이라면 소득 2만 달러 문턱에서 저성장 구조가 고착될 우려가 점점 커지고 있다.

 더 큰 문제는 새 정부가 이 같은 위기상황에 대해 전혀 위기의식을 갖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현재 한국 경제의 부진은 급속한 인구 고령화와 새로운 성장공식의 부재라는 구조적인 침체요인과 대내외 경제여건의 악화라는 경기순환적인 침체요인이 겹쳐진 것이다. 이를 극복하려면 중장기 성장전략과 단기적인 경기대책을 동시에 강구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새 정부는 새로운 성장전략에 대한 밑그림은커녕 현재의 경제상황에 대한 종합적인 진단조차 내놓지 못하고 있다. 경제에 대한 청사진 없이 ‘대선 공약’만을 되뇌고 있으니 성장전략과 대책도 없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