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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북한 이홍구 칼럼

한반도의 평화를 위한 새 틀 짜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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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이홍구
전 총리·본사 고문

한반도는 지금 전운이 감도는 긴장 속에서 심각한 위기를 맞고 있다. 한국전쟁의 총소리가 멈춘 1953년 7월 27일 이후 60년의 남북대결구도는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한 채 계속 위험수위를 높여 가며 오늘에 이르렀다. 결국 전쟁을 예방하는 위기관리체제의 효능이 한계점에 가까워오며 경보가 울리기 시작한 것이다.

 이렇듯 전쟁도 아니고 평화도 아닌 중간지대에서 불안과 불안정을 감내하며 60년을 버티어 온 한민족은 물론 한반도의 운명과 이해가 직결된 관계국들의 인내력과 지구력도 점차 한계에 다다르고 있다. 해를 거듭할수록 세계사의 흐름과 지구촌의 발전과정에서 멀어져 가며 절체절명의 처지에 놓이게 된 북한이 먼저 극단적 행로를 택한 것은 예기된 수순이라고 볼 수 있다. 예외국가의 길을 선택한 북한이 그 ‘예외성’을 지키는 데 한계에 부딪힘으로써 비상수단으로 빨간 깃발을 흔들고 있는 것이다.

 케리 미 국무장관의 순방외교가 위험수위로 치닫던 사태의 긴박성을 다소 해소시켜 주며 외교적 해결의 가능성이 부각되었다. 특히 2005년 제4차 6자회담의 결과물로 북한의 비핵화를 포함했던 9·19공동성명을 새로운 협상과 대화의 기초로 삼겠다는 미국과 중국 간의 입장조율은 매우 긍정적인 진전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7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 새로이 한반도평화의 틀을 다시 짜려면 우선적으로 사태가 오늘에 이른 상황의 논리부터 재고해볼 필요가 있다.

 1989년부터 1992년까지 3년에 걸친 비교적 순탄했던 남북협조의 시기는 과거 냉전시대의 북진통일 등 한국 주도의 통일론을 접고 남북 두 개의 국가체제가 공존하는 현실을 수용하며 민족공동체의 복원을 통한 통일로의 평화적이고 단계적인 전진을 함께 도모한다는 통일방안의 확정으로 시작되었다. 이어 북한이 두 국가체제의 평화적 공존과 협력에 동조하면서 남북기본합의서, 비핵화공동선언, 유엔동시가입을 이루어 냈다. 이렇게 시작된 평화통일로의 장밋빛 기대는 북한의 핵무기 개발 비밀프로젝트가 발각된 1993년 이른바 1차 핵 위기에 의해 무너지기 시작해 오늘에 이르렀다. 그때 북한은 왜 남북공조의 틀을 그렇게 깨트리고 말았을까?

 냉전종식 직후의 세계에선 미국이 유일 초강대국으로 등장했다. 아무리 남북 간에 협조관계가 수립되었다 해도 북한 체제의 안전과 존속은 궁극적으로 미국에 달렸으며, 그 미국으로부터 어떤 우호적 보장도 받지 못했던 북한으로서는 극도의 불안에 휩싸일 수 있었을 것이다. 그렇듯 체제안보가 불확실한 상황에서 북한은, 가장 효율적인 자구책은 핵무기개발이란 결론에 이르렀을 수 있다. 그 후 20년 미국은 북한 핵을 둘러싼 논란보다도 중동사태에 보다 큰 비중을 두고 얽매여 있었고 중국 또한 현상유지가 상책이란 안일한 입장을 고수해 옴으로써 결국 지금의 사태를 맞게 된 것이다.

 역사의 오묘함은 뜻하지 않은 상황을 연출한다. 북한 핵 위기가 계속 심각성을 더해 가던 지난 20년, 국제정치에서의 미국의 독무대는 서서히 사라지고 중국의 급격한 상승으로 세력균형의 개편이 진행되었다. 마침내 오늘날 한반도 문제의 해결과 아시아 평화를 위해서는 미국과 중국의 공동작업이 선결조건이란 결론에 이르고 있다. 미국과의 순조로운 호혜관계발전, ‘전략적 동반자’로 자리매김한 한국과의 우호관계 증진, 그리고 무엇보다도 동아시아에서의 핵무기확산 도미노와 미사일방어체계 확충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중국의 대한반도, 특히 대북한 정책이 피할 수 없는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된 것이다. 나아가서 북한에 생존을 위한 선택을 요구하는 무거운 역할도 주어진 것이다.

 결국 한반도의 평화와 비핵화는 공존·공영을 위한 남북 간의 합의와 동시에 미국과 중국, 그리고 러시아와 일본이 함께 보증하고 보장하는 새 틀을 짤 수 있어야 가능한 것이다. 이 새 틀은 안보·외교·경제 등 모든 차원에서 북한이 예외성을 탈피해 민족공동체, 아시아공동체, 그리고 지구촌 발전과정에 동참하는 데 관련국들이 적극 지원할 때에 효력을 얻게 될 것이다.

 이러한 역사적 외교의 대사업은 관련국들 정상 간의 신뢰와 공동의 비전이 있을 때만 가능한 것이다. 보름 후로 다가온 워싱턴 한·미 정상회의는 그러한 연쇄적 외교노력의 시발점이라 하겠다. 양국 간의 여타 현안들은 동맹국 간의 신뢰와 수순에 따라 풀어가기로 하고 이번에는 한반도 평화를 위한 새 틀 짜기 외교를 성공적으로 출범시키는 데 두 정상이 전력투구하기를 기대한다.

이홍구 전 총리·중앙일보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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