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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죄사건과 보안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요즘 보도되고 있는 경향 각지에서의 각종 범죄 사건들을 보면 작은 것으로는 하루동안 4천1백여 건의 풍기사범부터, 큰 것으로는 어린이 유괴사건, 백화의 살인강도 사건, 정신병환자의 잇단 살인극 소동 등, 대소 범죄사건들이 연일 되풀이되고 있다. 그리고 선량한 국민들에게 더욱 공포감을 일으키게 하고 있는 것은, 이와 같은 끔찍스런 사건들일수록 그 수사는 오리무중에 있다는 사실에 있다.
당국은 특히 요즘 와서 창궐 기세를 보이고 있는 이와 같은 범죄사건의 연발을 혹서의 탓으로 돌리려는 기미조차 있다. 확실히 지난달 29일부터 31일까지의 사흘동안 전국 네 군데에서 9명의 죄 없는 목숨을 앗아간 정신병자들의 발작이나, 지난 일요일인 30일 하루동안에 생긴 4천1백82명의 풍기사범 등은 그 허물의 일단을 더위에 돌릴 수도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그렇다 치더라도 더위만이 그 원인의 전부가 아님은 최근 수년래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난 보안경찰의 무위무책을 지탄하는 여론에 비추어 역력하다 할 것이다.
특히 구뇌의 영등포 「갱」사건이래 항간에는 안보경찰의 능력이 지금 날로 창궐기세에 있는 각종 범죄조직에 맞설 수 없을 만큼 구멍이 뚫려 있다는 비판이 파다하다. 영등포「갱」사건의 경우와, 또 최근에는 진주의 박춘우군 유괴사건의 경우가 단적으로 증명하듯, 경찰은 손안에 든 범인조차를 번번이 놓쳐버리는 실태를 저지르고 있다. 이에 겸하여 최근에는 몇몇 범죄사건에 경찰관들 자신이 직접 관련된 사건마저 있는 듯이 보도됨으로써 경찰에 대한 국민의 신뢰감은 땅에 떨어진 감마저 없지 않다. 실로 보안경찰의 위신 추락과 국민으로부터의 신뢰감 상실이 요즘 경향 각지를 어지럽게 하고 있는 각종 범죄 사건의 유인이 되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안타깝게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우리는 물론 오늘날 우리 경찰이 안고 있는 허다한 문제들을 외면하려는 것은 아니다.
인원·장비·예산 등 모든 면에 걸쳐 애로가 적지 않으며, 도시의 팽창과 급진적인 사회변화에 따르는 각종 범죄사건의 기하급수적인 증가에 대응할 수 있는 치안병력의 확보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사정도 모르는 바가 아니다. 그러나 국민의 생명·재산보호를 지상과업으로 삼고 있는 경찰에 대한 국민의 신뢰감이 동요되지 않고 있는 한 상기한 바와 같은 애로는 충분히 극복될 수도 있으리라는 것이 우리의 소신이다.
이런 의미에서 지금 가장 급한 것은 경찰 스스로가 국민으로부터의 신뢰를 회복할 수 있는 조처를 신속·과감하게 내리는 일 뿐이라고 생각된다. 그것은 기강확립을 명령하는 한낱 문서상의 훈령이나 행정조처의 문제가 아니라 경찰이 오직 맡은바 사명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보장해 주는 처우 및 신분상의 배려를 포함한, 보다 차원 높은 정치적 결단을 요구하는 것이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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