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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몽학생과 구경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며칠 전 하기방학에 들어 대학생들이 몇 명 찾아왔다. 방학을 이용하여 이곳 농촌에서 계몽사업을 하겠으니 협조를 해달라는 것이다. 전에도 몇 번 있은 일이기에 별로 이상할 것은 없었다. 그들의 몸에 밴 듯 한 우월한 태도, 그리고 일부러 헐어 만든 그럴듯한 작업복과 「워커」 등등 이런 것은 나를 우울하게 하고 기분 나쁘게까지 만들었다.
○…나는 그들에게 묻고 싶다. 봉사니 희생이니 계몽 등등의 미화된 표현을 앞세우고 그들은 농민에게 무엇을 계몽하고 어떤 것을 가르치겠다는 말인가. 「트위스트」와 「재즈」를 가르치려는가. 그렇지 않으면 상업방송에서 나오는 「아나보라」의 효험을 가르치겠다는 건가.
○…나는 대학생들이 동포애를 가기고 진지한 마음의 자세로 농촌계몽 사업을 하려는 것을 고의적으로 왜곡할 생각은 없다. 다만 농민들은 그들이 무엇을 도와주러 왔든 간에 별로 환영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생을 즐기기 위하여 사는 게 아니라 살기 위하여 일해야만 하는 농민에게 마치 구경 다니는 여행자의 기분으로 심하면 「바캉스」나 놀이라도 하는 듯한 사치스러운 태도는 농민에게 부러움과 반발만 갖다줄 뿐이 아닌가. <김항석·23·농업·전북 옥구군 성산면 도암리 환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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