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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민 정국 수습과 공화 당내 수습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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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6·8 총선후 줄곧 대여 강경 노선을 견지해 오던 신민당의 대변인이 30일 『정부·여당이 「전면부정」을 시인하면 부분적인 문제에 탄력성을 가질 수 있다.』고 지금까지의 당론을 약간 수정하는 듯한 태도를 보이자 공화당은 이에 비상한 관심을 쏟으면서 신민당의 「진의」를 분석하기 시작했다.
공화당은 31일 아침 김종필 의장, 백남억 정책위 의장, 길재호 사무총장, 김진만 원내총무 등 이른바 당 5역 회의를 열고 신민당의 「진의」를 분석한 끝에 신민당의 이번 당론 일부 수정 시사는 시국수습의 방법론을 싸고 벌어진 신민당 내분의 「소산」이며 당내에 조기수습을 바라는 인사들이 적지 않음을 시사하는 것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공화당 간부들은 특히 신민당내의 일부 온건파 인사들이 조기 수습을 바라고 있다는 사실을 중요시, 이효상 국회의장이 제의한 시국 수습안을 바탕으로 여·야 중진회담을 성공시키기 위해 대야 접촉을 보다 활발히 벌이키로 했다.
6·8 총선의 일부 부정은 선거 운동의 과열로 인한 『우발적이고 비계획적』인 것으로 단정하고 있는 공화당은 어떤 형태로든 「전면부정」을 시인할 수 없다는 태도다.
만약에 전면부정을 시인할 경우 국민에 대한 사과가 뒤따르고, 광범위한 인책이 불가피하며, 이렇게 되면 71년을 향한 집권 경쟁에 치명상을 입는 인사가 정부·여당 내에서 나오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더구나 국가 원수인 박정희 대통령이 시국수습을 위한 여·야 협상의 당사자가 되는 듯한 인상을 국민에게 주어서는 안되며 협상과는 초연한 입장에 있어야 한다는 것이 공화당의 기본방침인 것 같다.
그러므로 공화당은 신민당이 내세우는 「전면 부정의 시인」은 받아 들일 수 없고 부정·여당의 「의사」가 충분히 반영된 이효상 의장의 시국 수습안을 바탕으로 우선 여·야 중진회담을 열이 「대화의 길」이나 터놓은 다음 모든 현안문제를 논의해 보자는 입장이다.
중진회담이 열리고 보면 회담의 진전여하에 따라 시국수습의 최대 난제인 인책문제에 있어서 (1)국무위원 불신임의 형식을 통한 관계 장관의 해임 (2)국회법에 따른 부정선거 관련의원의 국회의원 자격 박탈, 나아가서는 박 대통령의 시국수습을 위한 제2의 단안도 기대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시국수습의 방법론을 싸고 공화당내의 「집안사정」은 그리 간단치는 않은 것 같다.
당내 일각에서는 정국의 조기수습을 위해서는 여·야 협상에 앞서 야당이 협상 「테이블」에 들어올 수 있는 선행조건으로 「어떤 단안」을 내려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는 반면 또 다른 일부에서는 무조건 여·야 중진 회담을 선행 시켜야 한다고 맞서고 있다.
집권당내의 일부에서 일고 있는 선행조건이란 선거부정에 관련된 인사에 대한 인책문제로 그 대상은 행정부의 몇 장관 그리고 당내에서 어느 한 사람이어야 한다는 주장이란 말도 있다.
여·야 협상에 앞서 선행조처를 취해야 한다는 당내 일부 인사들은 『야당은 앞으로 장기간 쉽사리 협상「테이블」에 나올 수 없다』고 판단, 9월에 접어들어 학생「데모」가 다시 일어나면 야당이 더욱 원내에 들어오기 힘들 것이므로 9월 정기국회 이전에 조기수습을 해야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무조건 중진회담을 내세우는 인사들은 신민당의 착잡한 당내사정으로 보아 9월 15일 전당대회를 치르고 협상의 주역을 맡을 지도체계가 성립되어야만 협상의 실을 거둘 수 있다고 보고 있다. 따라서 이들은 그동안 대야협상을 추진하면서 (1)야당의 태도를 부드럽게 하고 (2)국민에게 공화당이 협상을 위해 애쓰고 있다는 것을 PR하면서 기다리는 수 밖에 없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는 것 같다.
이효상 의장이 내놓은 시국 수습안은 특히 정치적 인책문제를 둘러싸고 고개를 들기 시작한 공화 당내 각파간의 반목은 그동안 잠잠했던 파쟁을 양성화시키는 사태로까지 발전했다. 인책문제는 당내 각파간의 단순한 시국난의 차이뿐 아니라 71년대를 향한 정치적 포석이 얽혀있기 때문에 더욱 복잡한 양상을 띠고 있다.
시국 수습을 위해 제1주자로 나서고 있는 이의장이 내놓은 시국 수습안 중 인책문제에 관하여 원칙론 이상을 내놓지 못한 것도 인책 문제에 당내 각파간에 얼마나 복잡한 「정치적이해」가 얽혀있는가를 증명해주는 것이라 하겠다.
전례없이 타락상을 보였던 6·8 총선의 책임소재를 둘러싸고 김종필씨계는 그동안 「내각의 전면인책」을 주장해 온 데 반해 반김파는 당이 형식상의 선거주체였다고 할지라도 마땅히 응분의 책임을 져야한다고 반격해 옴으로써 양파의 반목은 계속되어 왔었다.
인책 문제와 더불어 지난 21일 김종필 당의장은 길 총장과 사전협의도 없이 공화당 사무국내의 친길파로 알려진 간부 3명을 일방적으로 인사조치함으로써 당내 파쟁이 표면화되어 한때 길총장의 사표설까지 나돌았다. 어떻든 시국수습과 더불어 본격화되기 시작한 집권당내부의 파쟁은 「시국수습」이란 긴급한 과제 때문에 표면상으로 침묵을 지키고 있으나 수습의 진전 여하에 따라 언젠가는 폭발할 숙명적 요인을 지니고 있는 것 같다. <이태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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